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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포함


 2년의 기다림 끝에 포스가 돌아왔다. <루퍼> 등을 연출한 라이언 존슨이 메가폰을 잡은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는 전작 <깨어난 포스>가 열어젖힌 새로운 트릴로지를 성공적으로 이어간다. <깨어난 포스>가 오리지널 트릴로지의 <새로운 희망>을 새로운 세대의 인물들로 써내려 간 사실상의 리메이크였다면, <라스트 제다이>는 <제국의 역습>과 <제다이의 귀환>을 뒤섞은 뒤 이를 배반하고 새로운 세대의 도래를 본격적으로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루크 스카이워커(마크 해밀)와 레아 오가나(캐리 피셔) 등 이전 세대의 이야기는 마무리되고, 레이(데이지 리들리), 벤 솔로(아담 드라이버, 전작에서는 카일로 렌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나 정체가 밝혀진 이후에는 계속 벤으로 불린다), 핀(존 보예가), 포 다메론(오스카 아이작) 등의 캐릭터가 더욱 단단해지면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쩌면 이는 라이트사이드와 다크사이드의 간단한 흑백논리로 양분되던 기존 6편의 설정을 갈아엎고, 빛과 어둠 그 사이의 희미한 영역으로 트릴로지를 이끌어 가겠다는 의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의 중반부까지는 <제국의 역습>과 유사하게 진행된다. 루크가 요다의 밑에서 수련을 받았던 것처럼 레이는 루크의 밑에서 수련을 받고, 레아가 이끄는 저항군은 스노크(앤디 서키스)가 이끄는 퍼스트 오더에게 기지가 발각되어 사활을 건 전투를 벌인다. 영화는 이렇게 <깨어난 포스>가 <새로운 희망>을 따라갔던 것처럼 <제국의 역습>의 이야기를 변형하여 따라가는 것처럼 전개된다. 이러한 이야기는 영화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군열이 일어난다. 레이와 벤이 포스를 통해 연결되어 대화를 나누게 되면서 레이는 다크사이드의 유혹을 경험하고, 아직 마음을 다잡기 못한 벤은 어느 쪽에 서야 할지 갈등한다. 벤이 카일로 렌으로 변모한 계기가 되었던 루크의 제자 시절 이야기가 드러나면서 갈등은 더욱 커진다. 이러한 방향으로 전개되는 <라스트 제다이>는 오리지널 트릴로지의 서사구조를 답습하는 것을 거부한다. 나이 든 루크는 스스로가 전설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음과 동시에 벤의 스승으로써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레아는 더 이상 공주가 아닌 저항군을 이끄는 장군으로써 지혜롭고 결단력 있게 모두를 이끄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둘 모두 스스로의 상징성과 늙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영화의 후반부, 깜짝 등장한 요다(포스의 령으로 등장하는 요다는 오리지널 트릴로지의 인형과 같은 질감으로 등장한다!)의 조언을 통해 구시대의 제다이를 청산한 루크가 자신의 죽음으로 벤을 저지하고 저항군이 지닌 불씨를 살려내는 마지막은 시리즈에 대한, 전설에 대한 최고의 예우이자 헌사이다. 또한 새로운 세대가 자신들의 유산을 남기고 스스로 전설이 될 수 있도록 자리를 남겨주는 모습이기도 하다. ‘박수 칠 때 떠났다’라고 하기에는 40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나갔지만, <라스트 제다이>를보고 있자면 40년 동안 박수를 쳐도 모자랄 판에 그 박수를 다음 세대에게까지 돌려주는 모습까지 등장하면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벤 솔로 또한 다스베이더를 쫓은 가면을 부셔버리고 스노크를 직접 죽이면서 과거의 다크사이드와 결별하고 스스로가 새로운 악역으로 거듭난다. 다스 베이더의 “I am your father”에서부터 이어지던 스타워즈의 오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훌륭하게 계승하는 악역이랄까? <깨어난 포스>에서는 한 솔로(해리슨 포드)를직접 죽이면서 극단적인 콤플렉스를 표출했다면, <라스트 제다이>에서는 유사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였던 루크와의 대결을 통해, 그리고 또 하나의 아버지/스승 격의 인물인 스노크를 죽임으로써 더욱 단단해진 악역으로 거듭난다. <깨어난 포스>의 유약한 카일로 렌은 갈등 끝에 기존의 다크사이드와 라이트사이드 모두를 저버리고 새로운 존재로서 될 것을 선언한다. 벤 솔로가 좀 더 구체적으로 확실한 캐릭터로 발전했다면 레이의 캐릭터는 더욱 단단하고 굳건해진다. 루크와의 수련과정에서 벤과 스노크에 의해 다크사이드의 유혹을 받기도 했지만, 레이 또한 스스로의 과거를 받아들이고 벤이 새로운 길을 가려는 것처럼 자신의 길로 향한다. 이것은 시리즈의 전통을 따르는 것임과 동시에 부수는 설정이다. <깨어난 포스>의 개봉 이후 2년간 레이의 정체에 대해 많은 논쟁들이 오갔다. <라스트 제다이>가 제시한 정답은 레이가 아무것도 아닌 천한 출신이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각 트릴로지의 시작을 알린 <새로운 희망>이나 <보이지 않는 위협>의 아나킨(헤이든 크리스텐슨)과 루크는 사막으로 가득한 행성에서 살아가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제국의 역습>에서 루크의 아버지가 다스 베이더였음이 밝혀지고, 프리퀄 트릴로지를 통해 아나킨이 다스 베이더가 되는 과정이 완성되면서 스카이워커 가문의 신화가 완성되었을 뿐이다. 때문에 레이가 스카이워커 가문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존재라는 반전 아닌 반전은 스타워즈의 전통을 계승함과 동시에 배반한다.



 <라스트 제다이>를 통해 스타워즈는 드디어 스카이워커 가문과 결별을 선언한다. 시리즈 전체(심지어 스핀오프인 <로그원>까지 포함하여)를 관통하던 아버지라는 존재는 이번 영화를 통해 완전히 삭제되었다. 물론 그들이 남긴 유산과 잔재는 포스와 퍼스트 오더, 저항군이라는 이름으로 살아남겠지만, <라스트 제다이>의 선택은 더욱 공격적이고 파격적으로 세계관을 확장시킬 기회를 만들어 낸다. 요다의 등장이라던가 드디어 포스를 사용하는 레아의 모습, BB-8 의 적극적인 활용(그의 활약은 거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 수준이다. 그리고 너무 귀엽다) 등의 팬서비스에도 충실하다. 열혈 파이터에서 리더로 거듭나는 포 다메론과 저항군 전사로 거듭나는 핀의 성장을 보는 것 또한 즐겁다. 감초 같은 역할을 하는 새로운 생물 포그와 저항군의 새로운 캐릭터인 로즈(켈리 마리 트란)는 앞으로의 모습이 더욱 기대된다. 저항군 장교 홀도(로라 던)은 스타워즈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충격적이고 강력한 한 방을 선사한다. 물론 홀도와 레아가 나누는 마지막 대화 또한 너무 아름다워(일단 캐리 피셔와 로라 던의 투샷을 스타워즈에서 볼 수 있다는 것부터) 눈물이 나려 한다.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저항군과 퍼스트 오더의 전면전은 역시나 압도적인 비주얼을 자랑하며, 영화 중간에 등장하는 라이트 세이버 액션은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몇 손가락 안에 들 액션을 선사한다. <라스트 제다이>는 오래전 머나먼 은하계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드디어 미래를 향하고 있음을 선포한다.



 <깨어난 포스>로 준비운동을 마치고, <로그원>으로 방향성을 제시한 새로운 세대의 스타워즈는 과거와는 다른 신화를 써내려 가고 있다. 영웅도, 제다이도 아닌 그저 저항군의 일원일 뿐인 로즈의 등장과, 선악의 경계는 없다고 선언하는 듯한 코드브레이커(베니시오 델 토로)의 행동은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기존의 스타워즈가 그리스 비극 스타일로 풀어낸 스카이워커 가문의 역사였다면, 새로운 스타워즈는 저항군과 퍼스트 오더, 그 사이에서 살아가는 각 개인의 이야기가 엮여 만들어지는 역사로 새로운 출발을 예고한다. 단 한 명의 영웅이 세상을 구하고 공주를 구해내는 고리타분한 이야기는 더 이상 없다. <라스트 제다이>는 고리타분한 과거의 전통을 박살내고 더 넓은 세계관으로 전진한다. 예우를 갖추고 헌사를 보내면서 과거를 박살내고 새로운 이야기를 준비한다. 과거를 존중하고 보존하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언뜻 난센스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라이언 존슨의 <라스트 제다이>는 과거의 시리즈와 정면으로 부딪히면서 불가능해 보이는 시도를 성공시킨다. 그 시도는 성공적으로 스타워즈 세계관을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어낸다. 어떻게 보면 백지상태에 가까워진 결말 속에서, 트릴로지의 최종장의 펼쳐낼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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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저지, 패터슨 시에 패터슨(아담 드라이버)이 산다. 영화의 첫 장면, 패터슨은 아내 로라(골쉬프테 파라하니)와 함께 침대에서 아침을 맡는다. 그는 잠에서 깨어 손목시계를 확인하고, 시계를 차고, 옷을 입고, 시리얼을 먹은 뒤 아내와 강아지 마빈에게 인사하고 출근한다. 버스 드라이버로 일하는 그는 운행을 시작하기 전 잠시, 점심 도시락을 먹으러 폭포수 앞에 앉아 있는 잠시 동안 비밀노트에 시를 쓴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패터슨은 로라와 이야기를 나누고, 저녁을 먹고, 마빈과 산책을 하고, 항상 가던 바에 들려 맥주를 마신다. 짐 자무쉬의 신작 <패터슨>은 패터슨의 단조롭고 반복되는 일상을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담아낸다. 패터슨은 그러한 일상 속에서 시를 쓴다.



 짐 자무쉬가 주목하는 것은 일상이다. 때문에 분위기와 스타일에 치중했던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나 경쾌하고 요란스럽게 스투지스의 이야기를 담아낸 다큐멘터리 <김미 데인저>와는 다른 느낌을 준다. 오히려 그의 최근작들 보다는 <영원한 휴가>나 <천국보다 낯선>과 같은 초기작들을 떠올리게 된다. 반복되는 하루는 쇼트의 순서까지 유사할 정도로 그 반복성을 강조한다. 하루는 언제나 패터슨과 로라가 함께 누워 있는 침대에서 시작하고, 패터슨의‘마법 알람시계’는 스마트폰도 알람시계도 없는 패터슨을 매일 6시 10~30분 사이에 깨운다. 패터슨은 착실하게 자신의 비밀노트에 시를 쓰고, 버스 승객들이 나누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항상 같은 자리에 마빈을 묶어둔 채 바로 들어가 똑같은 자리에 앉아 똑같은 맥주를 마신다. 영화는 중간중간 반복되는 일상들을 중첩시킨 디졸브 이미지를 보여준다. 운전하는 패터슨, 그의 손목에 있는 시계, 그가 항상 점심을 먹는 곳의 폭포, 언제나 시의 주인공이 되는 로라 등의 이미지가 뒤섞인다.



 반복되는 일상은 연못이나 호수에 고인 물과도 같다. 잔잔하고, 아침마다 보는 거울처럼 언제나 같은 곳을 비추고 있다. 패터슨이 점심을 먹는 곳은 그러한 물 위로 폭포수가 떨어지는 곳이다. 떨어지는 폭포는 항상 일정하게 같은 것을 비추고 있어야 할 물에 파장을 일으키고, 물거품을 만들어낸다. 패터슨이 버스를 운행하면서 영감을 얻는 것도 비슷하다. 언뜻 보기에 패터슨의 일상은 몇몇 쇼트들이 재활용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단조롭게 반복된다. 하지만 버스에서 들려오는 승객들의 대화가 다르고, 바에서 벌어지는 사랑에 대한 에버렛의 집착도 다르고, 로라가 하고 싶어 하는 일들도 다르고, 하물며 매일 아침 인사하는 동료 도니(리즈원 맨지)의 불평도 다르다. 패터슨의 시(극 중 패터슨이 쓰는 시는 론 파젯 시인의 시이다)는 작은 다름들에서 출발한다. 패터슨의 비밀노트는 그가 반복 속에서 발견한 사소한 다름들의 기록이다. 그가 쓰고, 그의 목소리로 읊어지는 단어들은 폭포수가 만들어낸 물거품과도 같다.



 영화 내내 패터슨에서 태어났거나, 살았거나, 그곳을 거쳐간 예술가들의 이름이 언급된다. 이름을 딴 공원이 있기도 한 루 코스텔로, 패터슨에서 공연을 한 것으로 언급되는 이기 팝, 뮤지션인 지미 비비노와 플로이드 비비노, 패터슨에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 프랭크 오하라,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등의 시인들…… 또한 패터슨에 살고 있는 사람들 역시 한 명의 예술가로서 등장한다. 패터슨은 시인이고, 그가 산책하면서 만나는 사람은 래퍼(우탱클랜의 메소드 맨이 아마추어 래퍼로 출연한다)이며, 바에서 소동을 피우는 에버렛(윌리엄 잭슨 하퍼)은 배우이고, 우연히 만나게 되는 일본인(나가세 마사토시) 또한 패터슨처럼 시인이다. 이러한 언급들은 짐 자무쉬는 118분의 러닝타임 동안 패터슨 시를 예술가의 도시처럼 그려내려 하는 것 같다. 아니, 패터슨 의사는 모두가 예술가이며 단조로운 풍경 속에서 발생하는 물거품들을 포착해내는 모두를 예술가라고, 시인이라고 부르려는 것 같다.



 영화의 마지막, 일요일에 패터슨은 산책을 나간다. 항상 마빈과 함께 집의 오른쪽으로 향하던 그는 영화에서 처음으로 왼쪽 방향으로 향한다. 카메라는 처음으로 화면의 왼쪽으로 향하는 트래킹 쇼트를 보여준다. 패터슨은 점심을 먹는 폭포수 앞 벤치에 앉는다. 그에게 다가온 일본인은 패터슨에 살았던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와 프랭크 오하라를 아냐고 묻는다. 일본인은 버스를 운행한다는 패터슨의 말에 그것이 시적이라고 답해준다. 잠시 동안 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둘은 인사를 하고 헤어진다. 일본인은 패터슨에게 빈 공책을 꺼낸다. 토요일의 한 사건으로 시 쓰는 것을 잠시 멈췄던 그는 익숙하게 주머니에서 펜을 꺼내 뭔가를 써내려 가려한다. “아하!” 일본인은 패터슨과 대화를 나누다가 종종 감탄사를 내뱉는다. 그가 “아하!”라고 말하는 순간이 패터슨의 디졸브와 같은 순간으로 느껴진다. 다시 월요일로 돌아온 영화의 마지막 쇼트, 패터슨은 일어나 시계를 확인하고 손목에 시계를 찬다. 그러나 영화는 이전처럼 시계 속의 시간을 보여주지 않는다. 단순한 반복 속에서 드러나는 작은 변주의 순간들을 짐 자무쉬는 놓치지 않는다. <패터슨>은 그런 작은 순간들을 끄집어내고 조립한 작품이다. 패터슨의 시가 그러한 단어들의 배열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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