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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말기, 당나라 20만 대군의 공격에 맞서 싸워 승리한 안시성 전투를 다룬 첫 영화가 개봉했다. 영화는 안시성 전투 직전의 전투에서 살아남은 사물(남주혁)이 반역자인 양만춘(조인성)을 암살하라는 연개소문(유오성)의 명령을 받고 안시성으로 떠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사물이 목격한 양만춘은 안시성 백성들의 말처럼 “안시성 그 자체”인 인물이었다. 당 태종 이세종(박성웅)의 공격에 맞서 추수지(배성우), 파소(엄태구), 백하(김설현), 풍(박병은), 활보(오대환) 등의 용맹한 부하들과 함께 뛰어난 전략으로 승리를 거두는 것을 목격한 사물은 연개소문의 명령과는 달리 양만춘을 돕게 된다. 사실 안시성 전투를 영상화한 작품이 <안시성>이 처음은 아니다. <삼국기>나 <연개소문> 등의 드라마에서 등장한 적이 있으며, KBS 대하드라마 <대조영>의 초반부에도 안시성 전투가 등장한다. <안시성>의 안시성 전투는 <대조영> 속의 묘사와 유사하다. 아니, 전투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영화의 감성이 유사하게 느껴진다.



 때문에 <안시성>은 영화의 드라마적인 부분은 관객들이 익숙하게 느낄 서사와 감성에 맡기고, 안시성 전투에 스펙터클을 재현하는데 주력한다. 문제는 영화의 연출자가 액션 연출에 그다지 능하지 않은, <내 깡패 같은 애인>과 <찌라시: 위험한 소문>의 김광식 감독이라는 점이다. 다행히도 액션 시퀀스들이 같은 시기 개봉작인 <물괴>처럼 초라하다던가, 올해 다른 한국영화들처럼 엉성하지는 않다. 다만 액션에 딱히 기술을 갖지 못한 연출자인 만큼 다른 영화들에서 가져온 레퍼런스들의 나열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아쉽다. 영화를 보면서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의 헬름협곡 전투를 연상시키는 공성전, 마이클 베이 스타일의 슬로우 모션, 오우삼의 <적벽대전> 장예모의 <그레이트 월>, 잭 스나이더의 <300>, 리들리 스콧의 <킹덤 오브 헤븐> 등 수많은 영화들의 공성전 장면이 떠오른다. 물론 영화를 안정적으로 만들기 위해 적절하게 레퍼런스를 활용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점철되어 있으며 영화 고유의 포인트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점은 아쉽기만 하다. 한국의 다른 사극 영화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거대한 스케일을 선보였다는 것 외에 별다른 의의는 찾기 힘들다. 또한 당나라가 쌓아 올린 토성이 무너지는 장면의 스케일은 재난영화를 방불케 할 만큼 거대하지만, <대조영>의 같은 장면만큼 감정적인 울림을 주지는 못한다.



 <안시성>의 주요한 문제는 이야기를 제대로 쌓아 올리지 못한 것에 있다. 백성의 위치에서 그들의 삶을 돌보는 성주 묘사는 진부하고, 감정을 고조시키기 위한 캐릭터 소비(특히 정은채가 연기한 신녀 캐릭터는 오로지 감정의 고조만을 위해 존재한다)는 짜증을 유발하며, 억지로 감정을 끌어올리려는 후반부의 플래시백은 여전한 한국영화의 고질병이다. 사실 영화의 감정선이 제대로 성립되지 않는 것은 미스캐스팅의 영향이 크기도 하다. 물론 조인성의 잘못은 아니다. 조인성이 양만춘을 연기하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없지만, <대조영>의 최수종 같은 연기를 요구하니 배우 본연의 톤과 연출가가 요구하는 캐릭터의 톤 사이에서 불협화음이 일어난다. 영화의 지향점에 맞지 않는 배우를 캐스팅하니, 감정선이 제대로 쌓일 리가 없다. 때문에 <안시성>은 <대조영> 속 안시성 전투를 거대한 스케일로 확장한 수준에 그치고 만다. 다만 이러한 규모의 사극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스럽진 않지만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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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제일 처음 들은 말은 어느 관객의 “좆같네 씨발”이었다. 감독 교체에 1년 이상 개봉이 지연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고 개봉한 영화 <리얼>을 영화로 불러야 하는지 의문이다. 바로 한 주 전에 개봉한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는 영화라는 매체를 추락시키기 위한 영화였다면, <리얼>은 영화라는 매체 밖에 놓여야 하지 않을까? 115억의 제작비가 투입된 만큼 때깔 좋은 이미지들이(그나마 <트랜스포머>처럼 눈이 아프고 어지럽지는 않았다) 스크린을 가득 채우지만 영화적으로는 단 한 톨만큼의 필요성도 없고, 줄거리를 설명하는 행위는 <리얼>을 어떻게든 서사를 가진 창작물의 범주로 끼워 맞춰보려는 몸부림일 뿐이다. 해리성 인격장애를 소재로 삼았음에도 감독은 포털 사이트에‘해리성 인격장애’라는 7글자를 검색하기 귀찮았던 것 같다. 소재에 대한 몰지각함과 재능의 부재는 끔찍하게도 의미 없는 137분의 디지털 데이터 덩어리를 만들어냈다. 주연을 맡은 김수현을 비롯해 성동일, 이성민, 최진리 등의 배우들은 낭비되는 수준을 넘어서 능력을 부정당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수많은 카메오들은 그 존재가 삭제당한 것처럼 사라졌다. 끔찍하게 대상화된 <리얼> 속 수많은 여성들은 얼굴보다 다리와 엉덩이, 가슴과 허리가 더 많이 등장한다. 세 개의 챕터로 구성된 <리얼>은 시작-중간-결말의 3막 구조의 틀을 깨부수려는 듯 제멋대로 흘러간다. 아니, 의도적으로 깨부수려는 것이 아니라, 3막 구조에 맞춰서 플롯을 짜 놓았지만 감독을 비롯한 모두의 재량 부족으로 서사 자체가 없는 137분이 되어버린다. 액션 누아르를 표방했음에도 중고등학생의 극저예산 영화에나 나올법한 합의 액션이 등장한다. 후반부 피날레를 장식하는 슈퍼파워 액션은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에서 주란이 각성하는 순간보다 더 황당하고, 각성하는 순간의 묘사는 차라리 <디지몬 어드벤처>의 진화 장면처럼 그려진다. 발레 무용수가 만들었다는 마지막 발레 액션은 끔찍하기 짝이 없으며 아무런 맥락도 의미도 의도도 찾아볼 수 없다. 차라리 뮤직비디오 라면 이해가 됐을까? 봉준호 감독은 <옥자>를 국내에서 제작하면 500억 원의 제작비만큼 다른 한국영화들이 멈추기 때문에 해외자본을 투자받았다고 인터뷰했다. CJ CGV는 <옥자>가 극장 생태계를 파괴한다며 상영을 거부하고, <옥자>의 개봉일에 <리얼>을 개봉시켰다. 그러한 양보의 결과물 중 하나가 <리얼>이라면, 한국상업영화는 영화이기를 포기했음을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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