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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통해 처음 소개된 김진아 감독의 다큐멘터리 <동두천>은 러닝타임 12분의 VR 다큐멘터리 작품이다. 이번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VR 체험 섹션에서 무료로 관람할 수 있어 시간을 내어 감상했다. 동두천의 기지촌 여성들을 담은 작품이다. VR기기를 착용하면 동두천 기지촌을 촬영한 작품이라는 자막과 함께 영화가 시작된다. 동두천의 어느 편의점 앞, 골목길 사이, 어느 여관방 등의 영상이 이어진다. 카메라는 제자리에 고정된 채 주변의 사람들을 담아낸다. VR기기를 착용한 관객은 계속해서 두리번거리면서 동두천 기지촌 인근 거리와 그곳을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아저씨부터 이런저런 행인, 바에서 나오는 군복 입은 미군 등 여러 남성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몇 개의 장면이 이어지는데, 장면의 시작점이 편의점 입구의 정면이나 건물의 외벽 등을 향하고 있어 관객은 필연적으로 고개를 돌려 거리를 구석구석 돌아보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공간인 여관방에서 관객의 시야에 처음 들어오는 것은 벽에 걸려있는 선풍기이다.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다 보면 맞이하게 되는 충격적인 장면은 VR이라는 매체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장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극영화에서의 VR 활용에서는 의문점이 많이 남았었다. 게임이나 인터랙티브 시네마가 아닌 일반 극영화에 VR에 영화적 서사를 입힐 수 있을까 하는 것은 VR이 상용화된 지금도 해결되지 못한 문제로 남아있다. VR영화는 아니었지만 이에 가까운 형식을 가진 액션 영화 <하드코어 헨리>의 경우 이러한 문제를 정면으로 드러내며 영화적 쾌감을 반감시켰었다. 그러나 다큐멘터리 장르에서 VR의 활용은 일반 스크린이나 화면으로 보는 것보다 더욱 적극적인 체험과 인식을 이끌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동두천>과 같은 형식의 영화를 한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으로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서사 속에서 편집점을 잡기 어려운 극영화에 비해 공간을 체험하게 하는 VR 다큐멘터리의 경우 장면 편집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활용도가 높아 보인다.



 <동두천>의 이야기는 1992년 미군에 의해 살해된 여성 성노동자를 다룬다. <동두천>이 어떤 이야기를, 서사를 그린다고 말할 때, 그 방식에 있어서 기존의 영화적이라고 불리는 방법론은 등장하지 않는다. <동두천>이 VR을 통해 얻는 영화적 효과는 기존 극장 스크린에서 카메라가 보여주는 것을 목격하는 효과보단 멀티채널 스크린으로 상영되는 전시 영화가 주는 효과와 유사하다. 영상 자체에 압도되는 것은 아니지만, 두리번거리기를 통해 장소 자체를 체감하고, 사건 당사자의 행적을 뒤쫓아간다. 다소 선정적일 수도 있는 소재지만 <동두천>은 그러한 함정에 빠지는 작품은 아니다. 차분할 정도로 천천히, 고요하게 사건을 따라가는 영화는 기치촌 거리의 분위기뿐만 아니라 사건 당사자의 공포와 긴장감과 같은 감정까지 느낄 수 있다. 세심하게 만들어진 영상은 VR이라는 매체의 효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다큐멘터리 장르의 VR 활용의 가능성과 미래를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동두천>은 독특하고 특별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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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시작은 이렇다. 자넷(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이 문을 열고 분노에 찬 표정으로 문 앞에 서있는 상대를 바라본다. 무언가 소리를 지르더니 문 뒤에 가려진 손에 들고 있던 권총을 겨눈다. 영화는 여기서 몇 시간 전으로 되돌아간다. 영국 보건복지부 예비장관으로 임명된 자넷은 이를 축하하기 위해 자넷은 친구들을 불러 홈파티를 열 계획이다. 그의 헌신적인 남편 빌(티모시 스폴), 자넷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독설가인 에이프릴(패트리샤 클락슨)과 뉴에이지에 빠져있는 그의 독일인 남편 고트프리드(브루노 간츠), 빌의 오랜 친구이자 교수인 레즈비언 마사(체리 존스)와 세 쌍둥이를 임신한 그의 파트너 지니(에밀리 모티머), 그리고 자넷 부부의 친구인 마리온의 남편이자 은행가인 톰(킬리언 머피)이 차례로 도착한다. 파티를 시작하려는 순간 빌이 발표할 것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의 폭로를 시작으로 자리에 모인 사람들 각각의 폭로가 이어지며 파티는 아수라장이 된다.



 로만 폴란스키의 <대학살의 신>을 연상시키는 <더 파티>는 영국의 여성 감독 샐리 포터의 신작이다. 브렉시트를 통과한 영국의 현재 상황과 그곳의 정치, 페미니즘과 뉴에이지 사상 등 온갖 재료를 뒤섞어 만들어낸 질펀한 블랙코미디인 <더 파티>는 71분의 짧은 러닝타임으로 밀도 있게 신랄한 이야기를 전달한다. 상류층 리버럴들의 겉만 번지르르한 껍데기를 벗겨내고 이를 스크린에 전시하는 블랙코미디 영화는 많지만, <더 파티>만큼 짧고 굵은 영화는 흔치 않다. 거미줄처럼 복잡한 인물 사이의 관계가 코믹하면서도 폐부를 찌르는 비판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위선적인 모습만을 드러냈던 인물들의 모습이 까발려지는 장면에서 묘한 쾌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7명의 캐릭터가 끊임없이 대사를 뱉어대고 카메라는 계속해서 그들의 뒤를 쫓아간다. 대사를 탁구공처럼 숨 가쁘게 주고받는 와중에 톰이 들고 온 권총은 총알의 행방이 어디로 향하게 될지를 궁금하게 만들며 서스펜스를 자아낸다. 71분의 짧은 러닝타임임에도 순식간에 7명의 캐릭터를 구축하는 솜씨가 놀라운데, 여러 캐릭터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캐릭터는 단연 에이프릴이다. 독설가 캐릭터로 등장하는 에이프릴이 던지는 한 마디 한 마디가 통렬한 유머로 다가온다. 몇몇 장면에서는 이렇게 말하는 캐릭터와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놀라울 지경이랄까? 동시에 그의 독설이 밉지만은 않게 되는 지점까지 만들어낸다. 위선으로 넘치는 인물들의 관계에서, 유일하게 (에이프릴의 표현을 직접 인용하자만)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에이프릴과 고트프리드뿐이기도 하다. 가장 냉소적인 인물이 가장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니, 감독의 냉소가 스크린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기분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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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포함


 일레인(사만다 로빈슨)이 한적한 소도시로 이사 온다. 남편 제리(스티븐 워즈니악)이 사망한 뒤 새로운 삶을 찾아 이사 온 것. 젊고 아름다운 마녀인 그는 마을의 남자들을 유혹하기 위해 사랑 마법과 사랑의 물약을 만들어 사용한다. 그러나 그가 만나는 남자들은 모두 마법과 물약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나간다. 일레인은 그렇게 죽은 남자들을 조사하던 형사 그리프(지안 키스)를 보고 그가 운명의 상대라고 여기게 된다.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동화적 판타지에서 살고 있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그리는 <사랑의 마녀>는 그동안 할리우드 고전 영화들을 뒤집고 꼬집는 작업을 해온 애나 빌러의 신작 장편영화이다. 35mm 필름으로 촬영된 화면부터 테크니컬러를 재연한듯한 색감, 알프레드 히치콕을 비롯해 수많은 고전 스릴러 영화를 떠올리게 만드는 화면 구도와 음악, 의상부터 세트까지 직접 수작업으로 제작한 애나 빌러의 취향이 뒤섞여 <사랑의 마녀>만의 독특한 비주얼을 만들어낸다. 제작연도가 2016년이라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놀라운 비주얼에 적응하던 초반 1시간 이후 영화가 늘어지는 감이 있지만, 애나 빌러의 개성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120분의 러닝타임이 크게 지루하지 않게 흘러간다.



 사실이 영화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단박에 파악하기는 힘들다. 주인공인 일레인은 모든 남성들이 바랄법한 젊고 아름답고 섹시한 여성이며, 그 스스로도 가부장제에 맞춰진 남성의 사랑을 바라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동시에 그는 마법과 물약으로 남성들을 파괴하고 다닌다. 이사 온 후 일레인과 처음 관계를 가진 남성인 웨인(제프리 빈센트 파리지)은 일레인과의 관계 후 복상사로 사망한 것처럼 그려지며, 두 번째로 만난 유부남 리처드(로버트 실리)는 일레인과 헤어진 후 그를 다시 보지 못한다는 생각에 자살하고 만다. 주인공인 일레인은 남성이 여성에게 바라는 육체적 판타지를 완벽에 가깝게 충족시켜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했고, 그렇게 되었다. 그리프와 함께하는 일레인의 모습은 백마, 아니 유니콘을 탄 왕자를 만난 동화 속 여성의 이야기로 그려진다. 그러한 여성이 남성들을 파괴한다는 설정과, 파괴된 남성들이 자신들의 성욕, 욕망으로 인해 이를 자초했다는 지점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동시에 남성의 성적 판타지를 충족시켜주어야 사랑을 얻을 수 있다는 일레인의 모습이 내레이션과 대사, 행동을 통해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앞서 언급한 지점이 희석되기도 한다. 일레인, 그리고 바에서 야한 춤을 추는 여성들을 비롯해 여성의 신체를 담아내는 촬영들이 남성 판타지를 충족시키기 위한 구도로 그려지고 있기도 하다. 애나 빌러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영화 중반 즈음, 일레인은 자신이 마녀가 되는 의식을 치러준 다른 마녀들(영화 속에서 마법사’Wizard’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고, 남성도 스스로를 마녀라고 지칭한다)을 만난다. 그곳에서 마녀는 마녀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중세시대 마녀사냥을 당하고 마녀들이 화형 당한 것은 그들이 자신의 성욕과 성애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긴 했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하며 강단에서나 그들에 대한 긍정적인 관심과 흥미가 존재한다.” 6색 무지개로 가득했던 일레인의 옷 안감을 생각해보면 영화가 말하는 마녀는 여성과 퀴어를 포괄적으로 이야기하는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본래 그들을 조롱하고 모욕하는 단어인 퀴어를 자신들의 이름으로 습득해버린 것처럼, 오랜 역사가 그들을 마녀라고 불러왔다면 그들 스스로 마녀의 의식을 거행하고 마녀가 돼버린 사람들. <사랑의 마녀>에 등장하는 마녀들은 그런 존재가 아닐까? 일레인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그려지는 두 남성의 직접적인 사인은 마약으로 인한 심장마비와 자살이었고, 그것은 일레인의 저주나 마법이 아닌 그들의 자의적인 선택으로 볼 수 있다. 자신들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줄 여성이 떠나가는, 떠나간 것을 견디지 못한, 일레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Poor baby”인 남성들의 모습은 찌질하기만 하다. 애나 빌러는 여성을 성적 판타지로만 대하면서 그것이 아니게 됐을 때의 남성들의 반응을 담아낸다. 그리고 죽은 남성들의 시체를 잡는 카메라는 죽은 시체의 특정 부분을 클로즈업해 촬영한 몽타주로 이루어진다. 마치 히치콕의 영화에서 죽은 여성의 시체를 잡아내는 장면을 고스란히 따온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 부분에서 드러나는 전복성이 흥미로웠다.



 일레인이 마지막으로 만난 남성인 그리프와 연극처럼 가짜 결혼식을 진행하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 이후 그리프와 일레인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난다. 그리프는 “사랑은 없으며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녀와 계속 함께할 수 없다”라고 생각하고, 일레인은 “내가 원하던 사랑을 찾았어”라는 내용을 늘어놓는다. 흔히 페이스북 같은 곳에서 ‘연애하는 남녀의 생각 차이.jpg’ 같은 제목을 달고 돌아다닐 것 같은 내용이다. <사랑의 마녀>는 이러한 내용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그 원인을 생각하게 만든다. 남성들이 가부장제를 통해 주입한 생각대로 살아가는 주인공 일레인과, 역시 ‘남성은 이래야 해’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그리프의 모습이 대비되는 순간이 가지는 묘함은 가부장제에 기반한 기존 할리우드 고전 영화(특히 스릴러 장르)를 뒤집는 장치로 작용한다.



 결론적으로 <사랑의 마녀>는 여성(그리고 퀴어)이 마녀사냥을 당하던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성욕과 성애를 드러내면 탄압받고 눈총을 받고 심지어 화형까지 당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마녀라는 소재를 굉장히 직접적으로,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독특한 세계관은 기존 장르의 클리셰를 따라가는 듯하지만 디테일한 부분에서 이를 뒤집는다. 사실 영화가 의도한 바가 명확히 드러난다기엔 의뭉스러운 부분들로 넘쳐난다. 페미니스트처럼 등장했던 트리시(로라 와델)의 캐릭터는 어떤 이유에서 등장한 것이고 행동한 것인지 알 수 없으며, 일레인을 마녀로 만들어준 남성 마녀는 흔히 말하는 ‘개저씨’ 같은 행동을 일삼는다. 그럼에도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려는 여성의 욕구가 드러났을 때 이를 다시 억누르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사랑의 마녀>는 아주 단순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각자의 욕망이 있으며, 그 욕망을 드러내는 것에 젠더가 문제가 되어선 안 된다. 영화를 너무 좋게만 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애나 빌러가 손수 만들어낸 세계관에 매력이 강렬하게 다가온 것만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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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인 로라(로라 던)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의뢰인 풀러(자레드 해리스)와 8개월째 씨름 중이다. 그는 다른 남성 변호사의 말을 듣고 바로 납득하는 풀러를 보며 자조한다. 가족과 함께 살 집을 새로 지을 예정인 지나(미셸 윌리엄스)는 재료로 쓸 벽돌을 얻기 위해 홀로 사는 노인 앨버트(린 어벌조노이스)를 찾아간다. 지나는 앨버트를 설득하지만 함께 간 남편은 자꾸만 벽돌을 굳이 주지 않으셔도 된다고 이야기한다. 결국 벽돌을 얻은 지나의 뒷모습에 앨버트는 “아내가 내조를 잘 하네요”라고 지나의 남편에게 이야기한다. 목장에서 말을 돌보며 단조롭고 지루한 일상을 보내던 여인(릴리 글래드스톤, 극에 이름이 나오지 않음)은 우연히 사람들을 따라 학교법 강의에 오게 된다. 수업의 강사인 변호사 초년생 엘리자베스(크리스틴 스튜어트)는 4시간이 걸리는 리빙스톤에서 학교를 오가며 수업을 진행한다. 여인은 엘리자베스에게 식당을 안내해주며 미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세 에피소드가 107분 동안 이어지며, 각 에피소드가 비슷한 시간대에 벌어진 일임을 암시하는 느슨한 연결고리만을 남기는 <어떤 여자들>은 이야기가 아닌 뉘앙스를 통해 에피소드들을 잇는다. 노골적이지 않지만 집중하고 주의 깊게 감상하면 드러나는 여성의 삶과 일상, 어떤 네 여인이 세상과 맞서가며 살아야 하는 모습, 거기서 비롯되는 외로움과 피곤한 감정이 굵은 입자의 16mm 필름 화면에 담긴다. 몬타나 주의 겨울이 주는 황량한 길은 여인들의 감정을 대변하는 이미지로 작용한다. 앞선 두 에피소드의 로라와 지나가 여성이기에 받는 시선과 차별들은 몬타나의 이미지와 겹쳐져 하나의 뉘앙스로 관객에게 전달된다. 노골적인 고발이나 폭로가 아닌, 그렇게 살아가게 된 두 여인의 모습을 그저 담아낸다. 16mm 필름의 굵은 입자는 그 삶이 겉보기엔 단조로운 일상이지만, 그 내면은 거칠고 불안정한 감정을 동반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장치로 작용한다.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목장을 관리하는 여인과 엘리자베스의 묘한 감정선과 소박한 연대는 앞선 두 여인의 모습의 위로가 된다.



 켈리 레이차트의 영화를 감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어둠 속에서>, <웬디와 루시> 등의 전작들에서 길의 이미지를 통해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갔다는 점은 알고 <어떤 여인들>을보러 극장으로 향했다. 길이라는 테마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담긴다. 그것은 밝고 즐겁고 경쾌할 수도 있고,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일 수도 있으며, 험난한 장애물일 수도 있다. <어떤 여자들>은 주위가 텅 비고 황량한 길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가져와 에피소드의 뉘앙스를 만들어낸다. 달리는 차를 잡는 시퀀스에서 카메라는 언제나 여성 캐릭터의 얼굴을 잡아내고, 창에 비친 길의 모습과 함께 얼굴을 보여준다. 이미지가 곧 감정으로 작용하는 영화적 연출은 <어떤 여인들>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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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구시가지에 위치한 후통 거리에서 살아가는 모녀가 있다 싱글맘인 엄마와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인 딸은 사사건건 다투기만 한다. 종종 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지만, 그들의 대화는 대부분 돈과 남자에 관련된 이야기일 뿐이다. 각본과 연출은 물론, 직접 딸 역할로 출연까지 한 양밍밍 감독의 데뷔작 <행복하길 바라>는 모녀관계를 다룬 신선한 작품이며, 동시에 베이징의 골목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잡아낸다. 영화는 유럽이나 북미의 영화들이 가진 익숙하고 전형적인 프레임의 구도를 사용하지도 않고, 중화권이나 한국을 비롯한 많은 동아시아 국가들의 신파 서사로도 빠지지도 않는다. 



 영화 내내 두 인물은 좀처럼 한 프레임 속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그들이 연결되어 있는 쇼트는 그저 같은 공간 안에 존재함을 보여주는 몇몇 장면들, 그들이 동거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들(가령 식탁에서 설거지 거리를 건네주는 손의 클로즈업) 등에서만 그들은 한 프레임 안에 존재한다. 그 밖의 쇼트에서 그들은 한 사람의 프레임을 침범하는 방식으로 프레임 속에 들어온다. 이러한 경우 한 사람은 포커스아웃 된다. 함께 먹는 음식의 이름으로 구성된 영화의 각 챕터의 마지막에서야 둘이 식탁에 함께 있는 장면이 제시될 뿐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영화의 결말부에 가서야, 둘은 한 프레임 속에 유연하게 자리 잡는다. 그리고 이는 둘이 셀피를 찍는 것으로도 드러난다. 



 많은 관계들이 그렇겠지만, <행복하길 바라>의 모녀관계는 다양한 층위를 품고 있고 그것을 2시간 남짓한 러닝타임 속에서 속속들이 보여준다. 둘은 일종의 계약관계, 동거인, 가족, 조언을 건네는 친구, 경쟁자, 동업자 등으로 그려진다. 서로의 삶에서 떨어질 수 없으면서도 분리를 꿈꾸는, 그렇기에 각자의 프레임 속으로 서로 돌출될 수밖에 없는 두 여성의 삶이 영화에 펼쳐진다. 이는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온 서구권 영화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로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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