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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포함


 일레인(사만다 로빈슨)이 한적한 소도시로 이사 온다. 남편 제리(스티븐 워즈니악)이 사망한 뒤 새로운 삶을 찾아 이사 온 것. 젊고 아름다운 마녀인 그는 마을의 남자들을 유혹하기 위해 사랑 마법과 사랑의 물약을 만들어 사용한다. 그러나 그가 만나는 남자들은 모두 마법과 물약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나간다. 일레인은 그렇게 죽은 남자들을 조사하던 형사 그리프(지안 키스)를 보고 그가 운명의 상대라고 여기게 된다.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동화적 판타지에서 살고 있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그리는 <사랑의 마녀>는 그동안 할리우드 고전 영화들을 뒤집고 꼬집는 작업을 해온 애나 빌러의 신작 장편영화이다. 35mm 필름으로 촬영된 화면부터 테크니컬러를 재연한듯한 색감, 알프레드 히치콕을 비롯해 수많은 고전 스릴러 영화를 떠올리게 만드는 화면 구도와 음악, 의상부터 세트까지 직접 수작업으로 제작한 애나 빌러의 취향이 뒤섞여 <사랑의 마녀>만의 독특한 비주얼을 만들어낸다. 제작연도가 2016년이라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놀라운 비주얼에 적응하던 초반 1시간 이후 영화가 늘어지는 감이 있지만, 애나 빌러의 개성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120분의 러닝타임이 크게 지루하지 않게 흘러간다.



 사실이 영화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단박에 파악하기는 힘들다. 주인공인 일레인은 모든 남성들이 바랄법한 젊고 아름답고 섹시한 여성이며, 그 스스로도 가부장제에 맞춰진 남성의 사랑을 바라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동시에 그는 마법과 물약으로 남성들을 파괴하고 다닌다. 이사 온 후 일레인과 처음 관계를 가진 남성인 웨인(제프리 빈센트 파리지)은 일레인과의 관계 후 복상사로 사망한 것처럼 그려지며, 두 번째로 만난 유부남 리처드(로버트 실리)는 일레인과 헤어진 후 그를 다시 보지 못한다는 생각에 자살하고 만다. 주인공인 일레인은 남성이 여성에게 바라는 육체적 판타지를 완벽에 가깝게 충족시켜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했고, 그렇게 되었다. 그리프와 함께하는 일레인의 모습은 백마, 아니 유니콘을 탄 왕자를 만난 동화 속 여성의 이야기로 그려진다. 그러한 여성이 남성들을 파괴한다는 설정과, 파괴된 남성들이 자신들의 성욕, 욕망으로 인해 이를 자초했다는 지점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동시에 남성의 성적 판타지를 충족시켜주어야 사랑을 얻을 수 있다는 일레인의 모습이 내레이션과 대사, 행동을 통해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앞서 언급한 지점이 희석되기도 한다. 일레인, 그리고 바에서 야한 춤을 추는 여성들을 비롯해 여성의 신체를 담아내는 촬영들이 남성 판타지를 충족시키기 위한 구도로 그려지고 있기도 하다. 애나 빌러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영화 중반 즈음, 일레인은 자신이 마녀가 되는 의식을 치러준 다른 마녀들(영화 속에서 마법사’Wizard’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고, 남성도 스스로를 마녀라고 지칭한다)을 만난다. 그곳에서 마녀는 마녀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중세시대 마녀사냥을 당하고 마녀들이 화형 당한 것은 그들이 자신의 성욕과 성애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긴 했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하며 강단에서나 그들에 대한 긍정적인 관심과 흥미가 존재한다.” 6색 무지개로 가득했던 일레인의 옷 안감을 생각해보면 영화가 말하는 마녀는 여성과 퀴어를 포괄적으로 이야기하는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본래 그들을 조롱하고 모욕하는 단어인 퀴어를 자신들의 이름으로 습득해버린 것처럼, 오랜 역사가 그들을 마녀라고 불러왔다면 그들 스스로 마녀의 의식을 거행하고 마녀가 돼버린 사람들. <사랑의 마녀>에 등장하는 마녀들은 그런 존재가 아닐까? 일레인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그려지는 두 남성의 직접적인 사인은 마약으로 인한 심장마비와 자살이었고, 그것은 일레인의 저주나 마법이 아닌 그들의 자의적인 선택으로 볼 수 있다. 자신들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줄 여성이 떠나가는, 떠나간 것을 견디지 못한, 일레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Poor baby”인 남성들의 모습은 찌질하기만 하다. 애나 빌러는 여성을 성적 판타지로만 대하면서 그것이 아니게 됐을 때의 남성들의 반응을 담아낸다. 그리고 죽은 남성들의 시체를 잡는 카메라는 죽은 시체의 특정 부분을 클로즈업해 촬영한 몽타주로 이루어진다. 마치 히치콕의 영화에서 죽은 여성의 시체를 잡아내는 장면을 고스란히 따온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 부분에서 드러나는 전복성이 흥미로웠다.



 일레인이 마지막으로 만난 남성인 그리프와 연극처럼 가짜 결혼식을 진행하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 이후 그리프와 일레인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난다. 그리프는 “사랑은 없으며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녀와 계속 함께할 수 없다”라고 생각하고, 일레인은 “내가 원하던 사랑을 찾았어”라는 내용을 늘어놓는다. 흔히 페이스북 같은 곳에서 ‘연애하는 남녀의 생각 차이.jpg’ 같은 제목을 달고 돌아다닐 것 같은 내용이다. <사랑의 마녀>는 이러한 내용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그 원인을 생각하게 만든다. 남성들이 가부장제를 통해 주입한 생각대로 살아가는 주인공 일레인과, 역시 ‘남성은 이래야 해’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그리프의 모습이 대비되는 순간이 가지는 묘함은 가부장제에 기반한 기존 할리우드 고전 영화(특히 스릴러 장르)를 뒤집는 장치로 작용한다.



 결론적으로 <사랑의 마녀>는 여성(그리고 퀴어)이 마녀사냥을 당하던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성욕과 성애를 드러내면 탄압받고 눈총을 받고 심지어 화형까지 당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마녀라는 소재를 굉장히 직접적으로,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독특한 세계관은 기존 장르의 클리셰를 따라가는 듯하지만 디테일한 부분에서 이를 뒤집는다. 사실 영화가 의도한 바가 명확히 드러난다기엔 의뭉스러운 부분들로 넘쳐난다. 페미니스트처럼 등장했던 트리시(로라 와델)의 캐릭터는 어떤 이유에서 등장한 것이고 행동한 것인지 알 수 없으며, 일레인을 마녀로 만들어준 남성 마녀는 흔히 말하는 ‘개저씨’ 같은 행동을 일삼는다. 그럼에도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려는 여성의 욕구가 드러났을 때 이를 다시 억누르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사랑의 마녀>는 아주 단순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각자의 욕망이 있으며, 그 욕망을 드러내는 것에 젠더가 문제가 되어선 안 된다. 영화를 너무 좋게만 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애나 빌러가 손수 만들어낸 세계관에 매력이 강렬하게 다가온 것만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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