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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피데스데이>는 <사랑의 블랙홀>을 슬래셔 버전으로 영리하게 뒤바꾼 작품이었다. 물론 타임루프물의 클리셰를 고스란히 따라간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영화 스스로 그러한 지점을 인지하고 비꼬는 지점들이 존재했다. 다만 문란한 여성에게 처벌이 가해진다는 슬레셔 영화의 공식을 버리지 못했고, 결국 여적여(여성의 적은 여자다) 서사로 영화를 마무리지으며 아쉬움을 남겼다. 전편의 흥행에 힘입어 2년 만에 제작된 속편 <해피데스데이2유>는 카터(이스라엘 브로우사드)의 룸메이트인 라이언(피 부)에게 타임루프가 일어나며 시작한다. 트리(제시카 로테)가 겪은 일을 다시 겪는 라이언은 자신이 만들어낸 양자역학 기계가 문제를 일으킨 것임을 알아채고, 팀원인 사마르(수라즈 샤르마), 드레(사라 야킨)와 함께 기계를 작동시킨다. 그러나 기계는 트리를 다시 타임루프 안에 가둬버린다. 심지어 트리가 깨어난 곳은 무언가 조금씩 다른 평행우주이다.


 <해피데스데이2유>는 전작의 내용을 고스란히 반복하는 대신, 평행우주라는 설정을 사용해 조금씩 변주한다. 가령 전작에서 성격 안 좋은 트리의 클럽 대표 다니엘(레이첼 매튜스)은 착한 성격의 사람으로 변해 있고, 전작의 세계에선 죽은 트리의 엄마가 살아있기도 하다. 때문에 타임루프를 멈추려 노력하는 트리와 평행세계에 남을 것인지에 대한 트리의 고민이 영화의 두 축을 차지한다. 거의 동시에 진행되는 두 이야기는 종종 덜컹거린다. 한쪽의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해 다른 한쪽의 이야기는 멈추다시피 한다. 라이언의 기계를 테스트한다는 알리바이가 있긴 하지만, 극의 흐름이 늘어지는 것에 대한 대답은 되지 못한다. 영화가 제시하는 ‘인생의 선택’에 대한 교훈 또한 너저분하기만 하며, 교훈을 뒷받침할 흥미요소를 영화가 만들어주지 못한다는 점이 아쉽다.



 타임루프물에 평행우주라는 설정을 가져온 것은 나름대로 흥미로운 설정이다. 그러나 전작처럼 타임루프의 클리셰를 무한히 반복하는 것은 물론, 평행우주가 등장하는 이야기들의 클리셰 또한 무수히 반복된다. 평행우주에서 몸이 약해지는 주인공, 이 우주에서는 살아있는 어느 인물, 돌아갈지 또는 남을지에 대한 선택으로 고민하는 주인공 등은 너무나도 익숙하게 보아온 이야기들이다. 게다가 넷플릭스의 <러시아 인형처럼>이 타임루프와 평행우주라는 소재를 절묘하게 섞어 놀라움을 알려주었고, 저스틴 벤슨과 아론 무어헤드의 <벗어날 수 없는>이 독창적인 타임루프 이야기와 비주얼을 만들어낸 것을 생각하면, <해피데스데이2유>는 두 소재를 안일하고 안전하게 뒤섞어 놓은 것에 불과하다. 전작보다 더욱 안정적이고 다양한 연기를 선보이는 제시카 로테의 열연과, 슬레셔 영화(사실 이번 영화는 호러나 슬레셔라고 부르기도 애매하다)의 불편한 클리셰들을 평행우주 설정을 통해 무마하는 모습 정도가 이번 영화를 지루하지 않게 해 준다. 쿠키영상을 통해 속편을 예고하지만, 그에 대한 기대가 딱히 생기진 않는 영화였다.

<쏘우>부터 <인시디어스> 시리즈까지 꾸준히 공포영화들에 출연해오다 <인시디어스3>를 통해 연출자로 데뷔한 리 워넬의 두 번째 연출작 <업그레이드>가 개봉했다. 영화의 설정은 언뜻 익숙하게 느껴진다. 사고로 아내 애샤(멜라니 밸레조)를 잃고 사지가 마비된 그레이(로건 마샬 그린)는 자신의 고객인 반도체 기업의 창립자 에론(해리슨 길벗슨)에게 어떤 제안을 받는다. 스템(STEM)이라는 칩을 척추에 이식하면 다시 걸을 수 있다는 것이 그 제안. 모든 게 자동화된 세상에서 아날로그를 고집하던 그레이는 결국 에론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된다. 그러던 중 스템이 그레이에게 말을 걸어오고, 그가 당한 사고 뒤에 음모가 있었음을 알려주며 그가 복수하기를 종용한다. 그렇게 그레이는 스템의 도움을 받아 복수를 시작하지만, 그 뒤에 숨겨진 음모가 더욱 거대했음이 드러난다.



 <업그레이드>는 드라마 <블랙미러>의 한 에피소드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문명 발전에 따른 부작용을 그려내려 한다는 점에서 그렇고, 결국 기술에 인간이 굴복하거나 지배당하는 것을 드러낸다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그러나 <업그레이드>는 세계관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블랙미러>를 비롯한 여러 SF영화에서 그려진 미래적 이미지와 설정들을 가져오고, 그것을 이용해 액션을 선보이려는 것이 이 영화의 목적이다. 예고편에서도 드러난 독특한 카메라 워크와, 스템에게 자신의 몸을 사용하도록 허락한 그레이(의 몸을 사용하는 스템)의 액션이 이 영화를 이끌어간다. 액션 시퀀스의 카메라는 인물의 시선을 따라가거나 단순히 액션의 동선을 담아내는데 그치지 않는다. 인간의 신체를 빌린 기계가 액션을 선보이는 만큼, 카메라는 그레이의 상체에 고정된 것처럼 기계적으로 움직인다. 액션의 합 자체는 인간의 신체를 기계가 움직이는, 혹은 기계화된 신체가 움직이는 영화들에서 익숙하게 봐왔던 것이지만, <업그레이드>의 카메라는 약간의 변화를 줌으로써 저예산의 한계를 극복하려 한다. 이는 기계-인간, 아날로그-디지털의 결합이라는 주제를 적절하게 반영하기도 한다. 가령 스템의 작동이 중지되는 상황에서 시점 쇼트가 아님에도 카메라가 그레이의 움직임에 고정되어 있는 장면 등이 이를 드러낸다. 하지만 영화 내내 반복되다 보니 산만해지는 경향도 있다. 중후반부 몇몇 액션 장면에서의 카메라는 과도하게 그레이를 쫓아가 액션을 제대로 담지 못하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업그레이드>는 영화의 세계관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점점 산만해지는 액션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것이 영화가 설정한 세계관일 텐데, <업그레이드>는 이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 그레이가 보여주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간의 부딪힘 혹은 융합이나, 엔딩에서 벌어지는 사건 등을 더욱 섬세하게 다뤘다면 수작이 나오지 않았을까? 물론 리 워넬이라는 연출자의 기존 출연작 또는 제작한 영화들을 보면 그가 SF를 통한 담론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폭력을 담아내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거기에 블룸하우스라는, 최소비용 최고효율을 추구하는 제작사가 함께하여 탄생한 작품이 <업그레이드>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저런 아쉬움은 많지만, 킬링타임용 100분짜리 영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그들의 목표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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