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담' 태그의 글 목록 :: 영화 보는 영알못

 극장용 한국 애니메이션은 대다수가 TV 애니메이션의 극장판이거나, 장난감 등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때문에 영화의 타겟관객인 아동에 맞춰진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이 한국 애니메이션 업계에 반드시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성인관객을 포함한 가족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어느정도 작품성을 지닌) 극장용 애니메이션에 대한 요구도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큰 성공을 거뒀던 작품이 <마당을 나온 암탉>이다. 작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언더독>은 <마당을 나온 암탉>의 오성윤 감독이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함께 했던 이춘백 감독과 공동연출하여 제작된 작품이다. 버려진 유기견 뭉치(도경수)가 짱아(박철민) 등이 속한 떠돌이 개 무리, 산에서 살고 있는 밤이(박소담)의 무리와 만나게 되며 겪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선 목소리 캐스팅이 상당히 화려하다. <스윙키즈> 등의 작품을 통해 스크린에 꾸준히 얼굴을 비추고 있는 도경수를 비롯해, 박소담, 박철민, 이준혁 등의 베테랑 배우들과 전숙경 등 전문 성우들이 함께 출연하고 있다. 전문성우가 아닌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에 불만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언더독>에서 목소리를 맡은 배우들은 모두 자기 몫을 해내고 있으니 그 부분에 대한 걱정은 접어도 좋을 것 같다. 2D와 3D를 오가는 연출은 두 감독의 전작 <마당을 나온 암탉>과 유사하다. 전작이 그림책에서 나온 것 같은 비주얼을 보여줬다면, 이번 작품은 인간에게서 벗어나려는 개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강조한다. 뭉치와 밤이를 비롯한 캐릭터들이 사냥꾼(이준혁)과 벌이는 추격전은 기대보다 훌륭한 액션을 보여주기도 한다.



 <언더독>의 이야기는 좋게 말하면 익숙한 즐거움이고 나쁘게 말하면 진부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진부한 이야기 속에 펫샵과 강아지공장 같은 동물권 이슈는 물론, 재개발, 외국인 노동자, DMZ 등의 이슈까지 자연스럽게 담아낸다. 물론 단순히 언급만 하고 지나가는 수준에 불과하기도 하지만 자연스럽게 문제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주목할만 하다. 특히나 재개발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서는, 영화 속 개들의 상황이 재개발 지역의 주민들의 상황을 곧바로 연상시키는 지점이 있다. 다만 후반부에 등장하는 동물친화적인 부부는 조금 과한 판타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한국영화 특유의 (이미 설명이 충분한데도 등장하는) 플래시백, 굳이 욱여넣는 러브라인 등은 진부한 클리셰로만 다가온다. 그럼에도 <언더독>이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와 볼거리를 갖춘, 아동부터 성인까지 다양한 관객층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영화의 목표는 충분히 달성했다고 생각한다. <마당을 나온 암탉>과 <언더독>, 그 이후를 이을 작품이 계속해서 등장했으면 하는 바램이 든다.

 재중동포 출신으로 <두만강> 등의 작품에 자신의 정체성을 담아내면서, <경주>, <춘몽> 등에 작품을 통해 한국의 지역색을 영화에 담아온 장률 감독이 신작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내놓았다. 이번 작품은 제목처럼 군산에서 촬영된 작품이다. 송현(문소리)이 남편과 이혼하자 윤영(박해일)은 그에게 갑작스러운 군산 여행을 제안하고, 둘은 군산에 도착한다. 둘은 어느 민박집에 묵게 되고 송현은 그곳의 사장(정진영)에 대해, 윤영은 사장의 딸인 주은(박소담)에게 묘한 호기심을 품게 된다.



 영화는 크게 군산을 담은 1부와 윤영이 사는 연희동과 신촌을 담은 2부로 크게 나뉜다. 영화의 제목이 뜨는 시점을 기준으로 나뉘는 영화의 전반부와 후반부는 우로보로스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반복되는 시간선을 그린다. 후반부가 전반부보다 앞선 시간대에서 발생한 것임을 알려주는 장치들이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우리 예전에 어디선가 만나지 않았나요?”라며 묻는 윤영의 대사는 뒤섞인 시간을 그대로 뒤섞이게 방치한다. 마치 우리가 존재하는 순간은 결국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동시에 존재하는 교차점이기에 굳이 시간선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이야기하는 것만 같다.



 윤영과 송현이 군산에 갔을 때 묵는 민박 사장은 재일교포이다. 자폐증이 있는 그의 딸 주은은 일본어로 이런저런 말들을 중얼거린다. 군산에는 여전히 일본식 주택들이 남아있고, 그들이 묵은 민박도 그러한 주택이다. 그곳은 사각형으로 순환하는 듯한 닫힌 구조를 지닌 공간이다. 인물들은 그 사이를 계속해서 돌아다닌다. 백현진이 연기한 조선족 인권운동가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울부짖지만, 그는 조선족의 말투를 모방하는 조선족이 아닌 사람이다. 그는 역사를 아는 것일까, 아니면 역사를 이용하는 것일까? 어느 쪽이든 그가 역사가 교차하는 어느 지점에 존재하기에 저러한 언행이 가능한 것일 것이다. 장률은 군산과 신촌을 배경으로 한중일의 역사가 교차하는 공간과 인물들 배열한다.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가 지닌 시간 구조는 교차와 순환을 만들어내며 인물들의 행동과 역사를 살포시 겹쳐 놓는다.



 결국 장률의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가 도달하는 지점은 그의 전작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시간의 순환, 교차성, 역사, 재중동포라는 정체성 등이 어지럽게 겹치고, 그 위에 인물들이 다시 한번 겹치면서 장률의 작품이 탄생한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 윤영은 자신의 서울 집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아주머니(김희정)의 큰할아버지가 자신이 흠모하는 시인 윤동주의 사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장률은 흐트러진 시간의 순환선 안에 우연들을 툭 하니 던져 놓는다. 역사, 지역, 민족 정체성은 결국 우연의 총체일 뿐임을, 그는 이 영화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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