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허샬라 알리' 태그의 글 목록 :: 영화 보는 영알못

기시로 유키토의 만화 [총몽]이 드디어 실사화 되었다. 제임스 카메론이 오랜 시간 연출하기 위해 매달렸지만, 결국 그가 제작하고 <데스페라도스>, <스파이 키드>, <마셰티>의 로버트 로드리게즈가 연출을 맡게 되었다. <알리타: 배틀엔젤>은 로드리게즈의 첫 블록버스터 작품으로, 그의 영화적 취향을 대형 자본 속에서도 맞춰줄 수 있는 제작자는 아마 카메론이 유일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알리타: 배틀엔젤>의 연출자로 로드리게즈가 발탁된 것은 은근히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소식이었다. 영화는 이도 박사(크리스토프 발츠)가 고철도시의 폐기장에서 뇌가 살아있는 망가진 사이보그를 줍게 되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딸을 위해 만든 몸체에 주워 온 뇌를 이식하고, 그에게 알리타(로사 살라자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전쟁으로 ‘자렘’을 제외한 공중도시가 모두 파괴되는 대추락이 일어나고, 대추락 이전에 만들어졌던 알리타는 휴고(키언 존슨)의 도움을 받아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으려 한다. 한편, 고철도시의 인기 스포츠인 모터볼을 주관하는 벡터(마허샬라 알리)와 시렌(제니퍼 코넬리)은 알리타에 얽힌 비밀이 드러나는 것을 저지하려 한다.



<타이타닉>과 <아바타>의 제임스 카메론이 제작에 참여한 만큼 거대한 스케일과 비주얼을 자랑하는 작품이다. 웨타 디지털의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고철도시와 공중도시의 비주얼은 유사한 세계관의 다른 작품들보다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퍼포먼스 캡처로 만들어진 알리타를 비롯한 사이보그들의 비주얼은 예고편을 보고 걱정했던 것에 비해 자연스럽다. <데스페라도스>나 <엘 마리아치> 등과 <플래닛 테러>를 당연하게 떠올릴 수밖에 없는 알리타의 캐릭터는 로드리게즈가 그간 만들어온 액션 시퀀스들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킨다.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겠지만, 사이보그들의 기계 부위가 뎅강뎅강 잘려 나가는 액션이 주는 쾌감은 확실하게 존재한다. 특히 영화 중반부 등장하는 모터볼 장면의 (비록 생각보다 짧았지만) 속도감과 박진감은 대단했다.



다만 이야기적인 측면에서 아쉬움만 남는다. <알리타: 배틀엔젤>은 일본만화 원작의 할리우드 실사영화들이 겪는 (특히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과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주인공의 이야기를 마치 <트와일라잇>이나 <헝거 게임>과 같은 영어덜트 영화처럼 그려낸다는 점이다. 인물들의 청춘 로맨스는 지겹기만 하고, 속편을 예고한답시고 영화 한 편의 이야기를 제대로 마무리 짓지 않는 것도 피곤함을 유발한다. 베일에 싸인 더 큰 악당을 조금씩 보여주느라 메인 악당 캐릭터의 존재감은 반감되고, 배후에 있는 진짜 계획은 제대로 소개되지도 못한다. 알리타가 기억을 잃어버렸지만 몸이 무엇인가를 기억하고 행동한다는 설정은, 너무나도 손쉽게 이야기를 전개함과 동시에 이야기의 파편만 뿌리고 제대로 엮어내지 못한다. 관객은 결국 악당과 영웅, 두 축의 이야기 모두를 온전히 알지 못하고 여러 추측만을 남기며 영화가 마무리된다.



알리타의 캐릭터 묘사도 아쉽기만 하다. ‘섹시 여전사’ 컨셉을 내세운 여러 영화들보단 괜찮은 캐릭터이지만, <플래닛 테러>의 체리(로즈 맥고완)나 <마셰티>의 루즈(미셸 로드리게즈)와 같은, 그간 로버트 로드리게즈가 만들어온 여성 전사 캐릭터들과 크게 차이를 보여주지 못한다. 원작을 영어덜트 영화처럼 각색한 것의 문제인지, 로버트 로드리게즈가 지닌 취향의 한계인지는 불분명 하지만, 로맨스를 통해 동기를 부여받고 전형적인 ‘소녀’ 캐릭터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아쉽기만 하다. 게다가 갑작스레 모성으로 회귀해버리는 시렌의 모습은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또한 알리타가 새로운 바디를 얻고, 바디를 자신의 코어에 맞게 모핑하는 장면은 변명의 여지없이 알리타의 몸을 대상화하고 있다.



이런저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알리타: 배틀엔젤>은 속편을 기대하게 하는 영화이다. 더 많은 모터볼 경기와 더욱 큰 스케일의 액션이 펼쳐질 것임을 예고하는 엔딩은 기대감을 품게 한다. 캐릭터 묘사에 있어서 아쉬움이 남지만, 전사 캐릭터로써의 알리타는 개선의 가능성을 품고 있기에 속편이 기대되는 부분도 있다. 2억 달러 예산의 블록버스터에서 이 정도로 취향을 밀어붙일 수 있다는 점 또한 속편을 기대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로버트 로드리게즈가 아닌 다른 감독이 연출하게 된다면 액션 장면에서의 쾌감이 다소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알리타: 배틀엔젤>의 액션에는 로드리게즈의 인장이 확실하게 담겨있기 때문이다. 일단 흥행이 잘 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지만, 부디 무사히 속편이 제작될 수 있기를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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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덤 앤 더머> 등의 코미디 영화를 만들어 오던 피터 패럴리 감독의 첫 드라마 장르 영화인 <그린 북>은 천재적인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와 그의 운전수였던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는 인종차별이 만연하던 60년대의 미국을 배경으로 상류층 흑인과 하류층 이탈리아계 백인의 이야기를 통해 휴머니즘적인 봉합을 선보인다. 문제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이 돈 셜리의 유족들의 허락을 받지 않고 제작되었으며, 돈 셜리에 대한 대부분의 묘사가 실제와 다르다는 주장이 있었다는 것이다. 영화와 실제는 별개라지만, 실존인물에 대한 실화를 그림에 있어서 이 영화가 가진 한계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더욱이, <그린 북>의 완성도는 준수한 편이지만 어쩔 수 없는 백인 감독, 백인 각본가의 시선이 두드러지게 드러나기도 한다.



 <그린 북>은 전적으로 마허샬라 알리와 비고 모텐슨, 두 배우의 연기에 기대는 작품이다. 사실 패럴리의 작품 대부분이 그러했다. <덤 앤 더머>는 짐 캐리에게,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는 기네스 펠트로와 잭 블랙에게 기댄 작품이었다. <그린 북> 또한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작품이다. 대신 보편적으로 공감하고 감동할만한 드라마라는 장르를 선택했을 뿐이다. 문제는 이 보편성이 백인의 시선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영화 속 셜리와 토니는 인종과 계급을 넘어서는 우정을 나누지만, 그 밖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지극히 백인적이다. 가령 영화 속에서 배경이나 다름없는 존재로 등장하는 여러 흑인 엑스트라들에 대한 시선은 높은 계급-그것이 실제 계급이든 인종적 계급이든-의 사람에 의한 시혜적 시선으로 그려진다.



 차라리 익숙한 클리셰 안에 있는 흑들의 대한 묘사는 인종차별에 대한 클리셰적인 묘사로 넘어갈 수도 있다. 아주 잠시 스쳐 지나가는 동양계 인물에게 인종차별적인 말을 내뱉고, 이후 장면에서 동양계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토니의 캐릭터를 보여주기 위한 도구로서 동양계 인물이 소비되기만 했다는 것을 드러낸다. 인도계로 추정되는 셜리의 집사 캐릭터 또한 가볍게 지나가고 만다. 결국 <그린 북>은 영화 속 토니, 피터 패럴리 감독, 셜리의 유족과 협의 없이 영화화를 진행한 실제 토니의 아들인 닉 발레롱가 등 백인 시점의 회고담일 뿐이다. 마허샬라 알리와 비고 모텐슨 두 배우의 열연이 가까스로 영화를 무난한 수준에 머물게 한다.


 샘 레이미의 첫 <스파이더맨> 실사영화가 개봉한 이후 16년 만에 스파이더맨이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됐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라는 제목으로 소니가 야심 차게 준비한 이번 영화는, 한 명의 스파이더맨이 등장하는 것이 아닌, 여러 차원에 존재하던 스파이더맨들이 한 차원에 모이게 되어 발생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동시에 이번 영화는 2011년 코믹스에 데뷔한 흑인 스파이더맨, 마일즈 모랄레스(샤메익 무어)의 오리진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는 킹핀(리브 슈라이버)이 차원 이동기를 만들어 내자, 사고로 다른 차원의 스파이더맨인 피터 B. 파커(제이크 존슨), 스파이더 그웬(헤일리 스타인필드), 스파이더맨 누아르(니콜라스 케이지), 페니 파커(키미코 글렌), 스파이더 햄(존 멀레이니) 등이 마일즈가 있는 차원으로 오게 된다. 방사능 거미에 물려 이제 막 능력을 갖게 된 마일즈는 이들과 힘을 합쳐 킹핀의 음모를 막고자 한다.



 간단한 감상부터 말하자면,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트릴로지와 마크 웹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존 왓츠가 MCU에서 제작한 <스파이더맨: 홈커밍>까지 모든 극장용 스파이더맨 영화를 통틀어 가장 놀라운 성취를 보여준다. 아니, 최근 경쟁적으로 각자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는 각종 시네마틱 유니버스들과 여러 슈퍼히어로 오리진 영화를 통틀어서도 손꼽을 만하다. 마일즈와 삼촌 애런(마허샬라 알리)의 관계를 통해 스파이더맨과 삼촌의 관계를 새롭게 그려낸 것, 인종과 젠더의 묘사를 자연스럽게 풀어낸 것, 멀티버스라는 설정을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을 통해 다른 영화들에 비해 훌륭하게 풀어낸 것 등 기존의 영화들이 쉽게 풀어내지 못한 것들을 이번 영화는 훌륭하게 해낸다. 특히 117분의 러닝타임 동안 펼쳐지는 코믹스 스타일의 작화와 애니메이션의 시각적 자유도를 통해 풀어낸 액션들은 황홀할 지경이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앞서 언급한 과제들을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을 통해 풀어낸다. 이미 많은 관객들이 알고 있을 스파이더맨’들’의 반복되는 오리진 스토리를 쌓여가는 코믹스들의 이미지로 보여준다던가, 이전 실사영화들의 주요 장면들을 코믹스 스타일의 몽타주로 보여주는 방식, MCU가 선택한 실사화의 방식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멀티버스의 묘사 등은 그저 놀라울 뿐이다. 특히 마지막 20여분 동안 펼쳐지는 액션 시퀀스는 애니메이션이 주는 시각적 자유도를 극한으로 밀어붙인 장면이 아닐까 싶다. 여러 차원이 겹쳐지고, 그 속에서 마일즈를 비롯한 여러 스파이더맨들과 킹핀 일행이 벌이는 액션은 최근 몇 년간 개봉한 여러 편의 슈퍼히어로 영화를 통틀어 가장 훌륭한 액션 시퀀스가 아닐까 싶다. 더군다나 스파이더맨의 소소한 행동들, 가령 벽을 타고 움직이는 장면 등 또한 가장 스파이더맨스럽게 연출된 장면이 아닐까? 경쾌한 발걸음으로 벽을 걷는다거나, 가볍게 주고받는 대화들 사이에서 어떤 실사영화에도 보지 못한 순간들이 존재한다.



 스파이더맨의 주변 인물들 묘사도 뛰어나다. 마일스가 자연스럽게 흑인-히스패닉 혼혈임을 드러내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대사들, 스파이더맨(들)의 조력자로서 활약하는 메이 숙모의 존재, 자연스럽게 속편에 대한 떡밥을 깔아 두는 여러 캐릭터들의 등장, 각자의 사연을 통해 움직이는 피터 B. 파커와 스파이더 그웬을 비롯한 다른 차원의 스파이더맨들은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가 지닌 가치를 더욱 올려준다. 이 놀라운 스파이더맨 영화는 현재 마일즈와 그웬의 이야기를 다룬 속편과 그웬을 비롯한 다른 스파이더우먼들이 등장하는 스핀오프가 기획 중이라고 한다. 스파이더맨의 마블로의 귀환을 반기던 팬들에게 소니가 멋진 반격을 한 것이 아닐까? 마블은 마블대로, 소니는 소니대로 각자의 스파이더맨을 계속해서 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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