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민지' 태그의 글 목록 :: 영화 보는 영알못

<버블 패밀리>는 어느 집의 늦둥이 외동딸로 태어난 마민지 감독의 가족사를 기록한 다큐멘터리이다. 80년대 말 서울 강남의 아파트 키드로 태어난 감독의 부모님은 도시 개발의 붐을 타고 중소규모의 건설업자로 중산층의 꿈을 이룬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1997년 IMF로 인해 버블은 무너졌고, 아파트 건너편의 작은 빌라로 넘어와 살게 되었다. 1년이면 다시 아파트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지만, 15년이 지나도록 빌라에서 살게 된 가족의 이야기를 <버블 패밀리>는담고 있다. 박정희 정부에서 시작해 IMF사태로 끝나는 30년간의 버블 부동산은 마민지 감독의 가족사를 어떻게 만들었고, 감독의 부모님은 여전히 부동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까? 다큐멘터리 제작지원금 100만 원을 부동산에 투자하자고 말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그들이 부동산에 집착하게 된 이유를 궁금케 한다.



 본래 울산의 화학공장 노동자로 일하던 마민지 감독의 아버지는 80년대 초반 서울의 도시계획 붐을 따라 상경한다. 집장사로 돈을 불려 본 경험이 있는 어머니와, 큰 리스크를 짊어지지만 과감한 투자를 하던 아버지는 88 올림픽에 맞춰 지어진 중산층의 상징인 잠실의 아파트에 입주하게 된다. 덕분의 마민지 감독의 어린 시절은 유복했고, 그의 어머니는 홈 비디오로 그 일상을 기록했다. 1997년, IMF에서 끊기는 홈 비디오의 기록은 그러한 그들의 가족사가 단순한 가족사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듯하다. 한국, 특히 서울 강남의 역사와 맞닿아 있는 <버블 패밀리>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버블 위에서 위태롭게 서 있는 가족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로또 말고는 돈 들어올 방법이 없다”라는 자조적인 말은 부동산 버블에 로또 맞은 듯이 돈을 벌었던 부모님의 과거를 돌아보게 만든다. 현재까지 이어지는 부모님의 부동산에 대한 집착의 원인은 이러한 구조에 있던 것이 아닐까? 딸의 학비로 쓸 수 있었던 돈으로 딸에게 줄 땅을 몰래 사두는 바람에 학자금 대출에 허덕이게 된 마민지 감독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아이러니가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분위기가 된다. 영화 말미에서 딸에게 이런 비밀을 밝히는 어머니의 모습과 그 땅을 직접 찾아간 마민지 감독에서 느껴지는 어이없음과 아주 작은 안도감의 양가적인 표정은 <버블 패밀리>의 주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영화는 마민지 감독의 가족사와 박정희 정부~IMF에 이르는 현대사를 동시에 그려낸다. 어쩌면 그의 가족사는 현대사의, 버블경제의 흐름에 그대로 편승해왔을 뿐일지도 모른다. 때문에 감독은 자신의 홈 비디오부터 온갖 뉴스 영상, 부동산 경제에 맞춰 개사한 가사를 부르는 소방차의 공연 영상까지 다양한 자료화면을 이용한다. 한국인의 공통적인 지점들을 함께 편집해낸 연출법과 가족의 화해 등을 이끌어내려는 대신 지금의 모습을 직시하는 태도는 마민지 감독의 이야기가 개인적인 가족사일 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공감을 이끌어낸다. 영화에 담긴 가족사는 모두가 조금씩은 공유하는 이야기로 남는다.



 잠실에 사는 가족의 이야기이기에, 잠실 롯데월드와 롯데월드타워의 모습이 끊임없이 카메라에 잡힌다. 진득하게 담기는 건설 중인/완공된 모습의 롯데월드타워는 스크린 밖에서 롯데월드타워가 사람들의 시선에 담기는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강 건너 왕십리에 사는 나에게도 조금만 시야가 트인 곳에 가면 높다란 월드타워의 모습이 보인다. 월드타워가 얼마나 잘 보이는지에 따라 미세먼지농도를 예측할 수 있을 정도이다. 월드타워를 볼 때마다 다양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지만, <버블 패밀리> 속 월드타워를 보고 든 생각은 하나뿐이다. “자본이 서울에 트로피를 세웠구나” 결국 승자가 정해져 있는 게임 속에 마민지 감독의 가족은 휩쓸렸던 것이고, 거대 자본은 IMF에서도 살아남아 505m짜리 거대한 트로피를 잠실에 건설했다. <버블 패밀리>를 본 지금, 월드타워가 단순한 랜드마크가 아닌 거대 자본의 트로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