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 제임스' 태그의 글 목록 :: 영화 보는 영알못

베이비(안셀 엘고트)는 드라이버이다. 그의 임무는 은행강도 등의 범죄를 저지르는 팀에서 팀원들이 안전하게 현장을 빠져나올 수 있도록 운전하는 것이다. 박사(케빈 스페이시)에게 빚을 지게 되어 그의 밑에서 일을 하게 되는 그는 빼어난 운전 실력으로 100%의 성공률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 사고로 청력에 이상이 생긴 베이비는 언제나 이어폰을 귀에 꼽고 다닌다. 음악을 들을 때면 청력이 진정되기 때문이다. 베이비는 박사의 범죄계획 위에 자신의 플레이리스트를 덧붙인다. 범죄 이후 도주하는 베이비의 리듬은 그의 아이팟 클래식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따라간다. 박사에게 진 빚을 청산한 그는 여자 친구 데보라(릴리 제임스)와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려 하지만, 박사와 그의 팀 버디(존 햄), 달링(에이사 곤살레스), 그리고 배츠(제이미 폭스)는 그를 놓아주려 하지 않는다. <새벽의 황당한 저주>, <뜨거운 녀석들>, <지구가 끝장나는 날>로 이어지는 블러드 앤 아이스크림 삼부작으로 이름을 알린 에드가 라이트 감독이 신작이다. <스콧 필그림 vs 더 월드>에 이어 그가 영국 밖에서 제작한 두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베이비 드라이버>는 그를 유명하게 만든 전작들에 비해 아쉬운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에드가 라이트의 리드미컬한 편집과 액션, 그리고 이번 영화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음악의 사용은 113분의 짧지 않은 러닝타임을 지루하지 않게 해준다.



 <베이비 드라이버>는 뮤지컬 영화이다. 물론 배우들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러닝타임 내내 끊이지 않는 음악과 가사를 차용한 수많은 대사들, 노래를 활용해 감정을 속삭이는 베이비와 데보라의 이야기 등은 뮤지컬 영화의 어느 장면을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칼라 토마스의 ‘B-A-B-Y’나 티-렉스의 ‘Deborah’, 벡의 ‘Debra’를각각 베이비와 데브라의 테마곡처럼 활용하는 유치한 재치도 돋보인다. 베이비가 버디와 달링, 그리프(존 번탈)를 태우고 도주하는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베이비 드라이버>가 왜 뮤지컬 액션 영화인지 단박에 알려준다. 팀원들을 보낸 뒤 차에 남은 베이비는 아이팟 클래식을 꺼내고 이어폰을 귀에 꼽은 뒤 존 스펜서 블루스 익스펜션의 ‘Bellbottoms’을 듣는다. 립싱크를 하며 리듬을 타는 베이비는 팀원들이 오자 운전을 시작한다. 음악의 러닝타임을 따라 5분 정도 이어지는 오프닝 시퀀스의 카체이싱은 음악의 리듬을 고스란히 따라간다. 경찰차를 따돌리고, 좁은 골목 사이를 180도 회전하며 통과하고, 고속도로를 역주행하는 긴 카체이싱은 마치 뮤지컬에서 배우가 춤을 추듯 진행된다. 팝/힙합/락/펑크/소울/디스코 등을 가리지 않는 30여 곡의 선곡은 이런 액션 시퀀스와 더불어 박사가 계획을 설명하는 장면, 베이비가 커피 심부름을 하는 평범한 장면에서 까지 뮤지컬 영화 속 장면처럼 그려진다. 주인공이 노래로 대사를 표현하지 않는 넌-버벌(non-verbal) 뮤지컬과도 같은 느낌이랄까? 때문에 영화의 액션 시퀀스와 코미디 부분들은 세련된 최신의 뮤직비디오처럼 느껴지지만 (이게 좋다는 건지 나쁘다는 건지는 개인 취향의 문제일 것이다) 베이비와 데보라의 애정씬들은 오래된 로맨스 영화처럼 느껴진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80~90년대 초 영화들의 대책 없는 낭만을 다시 재현해보려는 시도처럼 느껴진다. 비치 보이즈, 베리 화이트, 퀸, 런 더 쥬얼스 등을 아우르는 다양한 장르/세대의 뮤지션의 음악이 영화에 동원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확실히 <베이비 드라이버>는 에드가 라이트가 영국에서 만들었던 블러드 앤 아이스크림 삼부작이나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한 <스콧 필그림 vs 더 월드>보다는 아쉽다. 전작들에서 보여준 경쾌한 편집 리듬은 여전하지만, 음악과 액션/코미디를 접목시키기 위해 과하게 밀어붙인 지점들은 조금 피로하게 느껴진다. 호러, 액션, 스릴러, SF, 재난영화 등의 장르 클리셰를 그대로 따르면서도 캐릭터를 통해 클리셰를 전복시키면서 즐거움을 주었던 영국에서의 작품들과는 달리, <베이비 드라이버>의 인물들은 전형적이기만 해서 아쉽기도 하다. 청각장애가 있는 탈출 전문 드라이버라는 주인공의 캐릭터는 흥미롭고 신선하지만, 전형적인 흑인 갱스터 캐릭터의 클리셰를 끝까지 벗어나지 못하는 배츠, 마찬가지로 낭만에 빠져있는 라틴 아메리카 출신 히스패닉 캐릭터라는 클리셰로 점철되고 이제는 진부해진 대사/액션만을 끌어다 쓴 버디와 달링, 주인공 캐릭터의 로맨스가 진행되어야 하기에 존재한다는 듯한 인상을 주는 데보라 등의 캐릭터는 기존의 에드가 라이트 영화에서 관객들을 즐겁게 만든 캐릭터들과는 거리가 있다. 가령 (개인적으로 에드가 라이트의 최고작이라 생각하는) <뜨거운 녀석들>의 엔젤 형사는 판에 박힌듯한 모범경찰이 시골에 내려가 변화한다는 클리셰를 따르는 캐릭터이지만, 그러한 변화 속에서 영화 전체가 따르는 장르 클리셰를 전복시킨다는 점에서 흥미롭고 재미있는 캐릭터였다. 반면 <베이비 드라이버>의 캐릭터들은 철저히 장르 속에 존재하는 인물들이며, 베이비와 박사를 제외하면 기능적으로 소비된다는 인상이 강하다. 특히 데보라와 베이비의 양아버지 조셉(CJ 존스)은 캐릭터성이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기능적이다.



 <베이비 드라이버>는 눈에 띄는 장점과 단점이 맞부딪히는 영화다. 에드가 라이트는 <스콧 필그림 vs 더 월드>에서 코믹스와 게임의 형식을 차용해 청춘영화의 장르 안에서 재미있는 오락 영화를 만들었었다. <베이비 드라이버>에서는 액션에 뮤지컬을 결합한다. 이러한 시도는 일정 부분 성공하고 재미있다. 그럼에도 전작들처럼 번뜩이는 캐릭터가 부재하고, 장르 클리셰를 끌어오고 뒤엎으며 놀았던 번뜩임은 <베이비 드라이버>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결과적으로 <베이비 드라이버>는 충분히 즐길만한 재미있는 오락영화이지만, 에드가 라이트가 그간 재료로 삼았던 오락영화 장르들과 동일해졌다는 점에서 아쉽다. 그의 장편영화들을 비롯해 <그라인드 하우스>의 페이크 예고편 등을 즐겨왔던 골수팬이라면 <베이비 드라이버>에서의 에드가 라이트가 어딘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지도 모른다. 재미있는 영화이지만, 에드가 라이트에게 가지는 기대치가 너무 높다고 해야 될까. 그럼에도 올해 여름 극장가에 걸려있는 대다수의 작품에 비해 즐거운 영화임은 틀림없다.

<맘마미아!>가 딱 10년 만에 돌아왔다. 동명의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전편은 최근 10년 사이 개봉한 뮤지컬 영화 중 가장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한 흥행작이었다. 메릴 스트립을 필두로 한 화려한 캐스팅과 아바(ABBA)의 노래들로 채워진 뮤지컬 넘버들만으로도 황홀한 작품으로 기억한다. <맘마이아! 2>는 프리퀄이면서 동시에 시퀄인 형식을 취한다. 전작에서 5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시점, 도나(메릴 스트립)의 죽음 이후 소피(아만다 사이프리드)는 그녀의 소원이었던 호텔을 오픈하려 하고, 세 아빠에게 초대장을 보낸다. 오랜 준비 끝에 드디어 오프닝 파티 전 날, 여러모로 심란해진 소피는 도나의 젊은 시절은 어땠을지 생각해본다. 영화는 이렇게 젊은 도나(릴리 제임스)가 등장하는 과거와 소피를 비롯한 전작의 주역들이 등장하는 현재를 오가며 진행된다. 도나가 어떻게 샘(피어스 브로스넌/제레미 어바인), 해리(콜린 퍼스/휴 스키너), 빌(스텔란 스카스가드/조쉬 딜란)을 만났고 어떻게 그리스의 한 섬에 자리 잡게 되었을까, 소피는 무사히 도나의 꿈을 이뤄줄 수 있을까, 이번 영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맘마미아! 2>의 이야기는 확실히 무리수가 많다. 마치 메릴 스트립의 도나가 등장하는 딱 하나의 장면을 미리 정해두고, 이것에 맞춰서 이야기를 쓴 것만 같다. 이야기 자체만 놓고 보면 (물론 전작도 그랬지만) 막장 드라마가 따로 없다. 하지만 이번 작품 역시 전작과 마찬가지로 뮤지컬 영화만이 가능한 장점들로 이야기의 부실함을 채운다. 전작이 메릴 스트립과 아바의 노래라는 막강한 두 축으로 영화를 지탱했다면, 이번 작품은 메릴 스트립의 부재를 도나의 젊은 시절을 연기하는 릴리 제임스와 현재 시점의 아만다 사이프리드로 채운다. 특히 릴리 제임스의 활약이 돋보이는데, 묘하게 젊은 시절의 메릴 스트립을 연상시키는 외모부터 영화 전체를 자신의 것으로 이끌어가는 노래 실력과 연기를 선보인다. ‘When I Kissed the Teacher’를 부르며 등장하는 젊은 도나를 보고 있으면, 릴리 제임스만큼 이 배역에 어울리는 배우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와 함께 출연한 다이나모스, 전작에서 각각 크리스틴 바란스키와 줄리 월터스가 연기했던 타냐와 로지의 젊은 모습 또한 더 이상 좋은 캐스팅은 없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제시카 키나 윈과 알렉사 데이비스가 연기한 젊은 타냐와 로지는 전편의 배우들과 놀라운 싱크로율을 보이는 것은 물론, 릴리 제임스에 뒤지지 않는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비록 젊은 세 아빠를 연기한 배우들의 캐스팅(특히 해리를 연기한 휴 스키너는 완벽한 미스캐스팅이다)이 아쉽지만, 젊은 시절의 도나 앤 다이나모스를 만나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러닝타임 내내 즐겁기만 하다. 



‘Dancing Queen’, ‘I Have a Dream’, ‘Super Trooper’ 등 전작에도 등장했던 곡들을 다른 배우들, 혹은 더 많은 배우들이 함께 부르는 광경은 전작을 사랑하는 관객이라면 즐길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과거와 현재 시점을 오가는 편집이 다소 산만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두 개의 타임라인은 아바의 노래를 통해 꽤나 효과적으로 봉합된다. 연출자가 바뀌었지만 생각보다 매끄럽게 짜인 뮤지컬 시퀀스들은 객석에 조용히 앉아 있어야만 하는 극장 에티켓을 무시하고 뛰어놀고 싶어 질 정도이다. 특히 메릴 스트립이 등장하는 딱 하나의 장면은 산만하게 흩어진 두 개의 타임라인을 완벽하게 봉인한다. 이 정도의 존재감을 지닌 배우만이 가능한 장면이고, 메릴 스트립이 있기에 각본으로 쓰일 수 있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싶다. 단 한 장면 만으로 영화의 퀄리티를 바꿔버리는 메릴 스트립의 노래와 연기는 이를 동시대에 개봉관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할 뿐이다. 과거와 현재의 배우들이 한데 모여 ‘Super Trooper’를 부르는 영화의 마지막 무대는 영화가 지닌 단점들을 완전히 지워버린다. 이 이상으로 즐거운 속편을 만드는 게 가능할까 싶기도 하다. 엔드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흐르는 메릴 스트립이 부른 ‘The Day Before You Came’을 듣고 있으면, 허술한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눈물이 맺히는 경험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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