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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의 새로운 실사영화 <덤보>가 개봉했다. 디즈니 라이브 액션 필름의 시발점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연출한 팀 버튼 감독이 오랜만에 다시 디즈니와 협업을 했다. 이번 실사 영화는 1941년도에 나온 원작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로 흘러간다. 맥스 메디치(대니 드비토)의 서커스단에서 태어난 덤보는 밀리(니코 파커)와 조(핀리 호빈스)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둘의 아버지이자 전쟁에서 팔 한쪽을 잃은 승마 묘기 전문가 홀트(콜린 파렐)는 맥스에게 코끼리 조련사 역할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듣게 된다. 밀리와 조는 우연히 덤보가 거대한 귀를 사용해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맥스의 서커스는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어느 날 대형 서커스와 테마파크를 운영하는 반데비어(마이클 키튼)와 공중곡예사 콜레트(에바 그린)가 그들을 찾아와, 덤보에 대한 공동 소유권을 가지지 않겠냐는 제안을 한다. 맥스는 이를 받아들이고 단원 모두가 반데비어의 드림랜드로 떠나지만, 반데비어의 검은 속내가 점점 드러나기 시작한다.

 <덤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팀 버튼스러움’이 완전히 사라진 작품이다. <크리스마스 악몽>이나 <비틀쥬스>의 기괴한 유머,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나 <프랑켄위니>의 재기발랄함, <가위손>의 아름다움, 심지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독특한 CG 비주얼까지도 <덤보>에서는 자취를 감췄다. <덤보>는 현재 디즈니에서 찍어내고 있는 애니메이션 영화의 실사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완성도를 보여준다. 이야기는 원작과 다르게 흘러가지만, 감독의 개성이나 취향들이 완전히 거세된 안전한 영화가 됐을 뿐이다. 심지어 팀 버튼의 영화에서 대니 드비토와 마이클 키튼이 선역과 악역의 역할을 바꾸어 출연하고 있음에도 아무런 감흥이 생기지 않는 수준이다. 팀 버튼의 팬들이 <덤보>에 한없이 실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게다가 표면적으로는 탐욕스러운 자본주의자가 결국 자신의 테마파크인 ‘드림랜드’에서 자별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디즈니랜드가 서구식 가족주의의 충실한 꿈의 공간임을 역설하는 ‘디즈니랜드 프로파간다’가 될 뿐이다. 원작이 미국의 세계 2차 대전 참전을 앞두고 전쟁 프로파간다의 성격을 띠었던 것과 유사하다. 드림랜드는 무너졌지만 결국 또 다른 테마파크가 세워지고, 그곳은 말도 안 되는 판타지(하늘을 나는 코끼리와 1940년대에 등장한 로봇 팔)로 가득한 공간이다. 기존의 드림랜드가 모두가 가상임을 인정하는 판타지를 파는 곳이었다면, 새로운 맥스 메디치 테마파크는 가상 그 자체를 판매하려 한다. 때문에 <덤보>의 엔딩은 디즈니 라이브 액션 필름들의 한계만을 드러내는 것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덤보>는 더 이상 이야기가 아닌 귀여움 만을 팔게 된 디즈니 실사영화 파트의 현실을 드러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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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 앤드류스에게 오스카를 안겨준 작품이자, 60년대 뮤지컬 영화, 디즈니 영화의 황금기를 이끈 작품인 <메리 포핀스>의 속편이 55년 만에 개봉했다. 엄밀히 말하면 전작의 플롯을 고스란히 반복하는 리메이크의 방법을 택했지만, 이야기적으로는 전작에서 25년이 흐른 시점인 1935년 경제대공황 시기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어느덧 어른이 된 마이클(벤 휘쇼)과 제인(에밀리 모티머). 마이클은 결혼하여 애나벨(픽시 데이비스), 존(나다니엘 살레), 조지(조엘 도슨)의 세 남매를 두고 있지만, 1년 전 아내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상태이다. 어느 날 아버지 때부터 살고 있던 집에 은행장 윌킨스(콜린 퍼스)가 발행한 압류 통지서가 붙게 되고, 마이클은 집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대공황 시기에 일찍 철이 든 애나벨과 존은 가정부 에린(줄리 월터스)과 마이클을 도와 가사를 돕지만, 집을 압류당할 위기에 처한 마이클은 전전긍긍한다. 그러던 중 메리 포핀스(에밀리 블런트)가 돌아와 아이들을 돌보겠다는 제안을 한다. 메리 포핀스와 세 남매는 가로등 점등원인 잭(린-마누엘 미란다)과 함께 톱시(메릴 스트립) 등을 만나는 모험을 하게 된다.



 앞서 언급했지만, 영화는 전작의 플롯을 고스란히 따라간다. 해고-집의 압류의 위기를 겪는 가부장 앞에 아이들을 돌봐 줄 마법의 유모가 나타나고, 아이들은 그림 속(이번엔 도자기의 그림 속)에서 환상적인 모험을 하고, 은행에 가게 됐다가 아버지를 해고의 위험에 빠트리고, 메리 포핀스와 아이들의 여정에 함께하는 의문의 남자가 펼치는 뮤지컬 시퀀스가 이어지며, 결국 가족의 위기가 극복되며 모두가 함께하는 뮤지컬 시퀀스로 마무리되고 메리 포핀스는 다시 떠난다. <애니>, <시카고>, <나인> 등 뮤지컬 영화로 이름을 알린 롭 마샬 감독이 <숲속으로>에 이어 두 번째로 디즈니와 협업한 작품인 만큼, 그의 전공인 뮤지컬과 디즈니의 가족적인 분위기가 결합된 작품이다. 서프러제트였던 전작의 어머니 캐릭터를 노조 활동가인 제인이 이어받는다던가, 1차 대전 직전의 시대 분위기 속에서 영국의 제국주의를 슬그머니 드러냈던 전작의 몇몇 요소가 경제대공황 시대로 옮기면서 누그러지는 등 2018년에 제작된 영화다운 변화가 눈에 띈다. 



 특히 전작에 비해 발전된 기술력을 십분 활용한 뮤지컬 시퀀스들이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가장 놀라운 장면은 도자기 위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이다. 전작에선 단순히 그림 속으로 들어간 장면이 <스페이스 잼>이나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와 같은 실사와 셀 애니메이션의 결합으로 완성되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기존의 방식에 더욱 많은 기술적 첨가가 들어간다. CG를 활용하여 도자기, 팝업북, 애니메이션, 실사의 질감을 뒤섞어버리는 시각적 황홀경을 보여준다. 종종 너무 화려하기에 피로해지기도 하지만, 전작의 애니메이션 시퀀스가 지금의 시각으로는 심심하다고 느껴지는 것을 생각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이 든다. 도리어 후반부 등장하는 잭과 점등원들의 뮤지컬 시퀀스는 전작의 굴뚝 청소부들의 뮤지컬 시퀀스에 비해 안전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작이 몽타주와 트릭을 가미하여 시네마틱한 화려함을 보여줬다면, 이번 작품의 점등원 시퀀스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고스란히 촬영한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메리 포핀스 리턴즈>는 전작의 장점만을 골라, 2018년에 할 수 있는 것들로 훌륭하게 만들어낸 작품이다. 앞서 언급한 도자기 그림 시퀀스는 물론, CG를 통해 구현된 목욕 시퀀스 등은 뮤지컬 황금기 시기의 영화들이 지닌 화려함을 현재에 걸맞게 다시 구현한다. 여전히 소년성을 지닌 벤 휘쇼가 연기하는 유약한 가부장의 모습과 경제대공황 시기라는 배경은 브렉시트에 직면한 영국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톱시가 등장하는 시퀀스는 배우의 재능이 만들어낸 흥겨움으로 가득한 장면이다. 무엇보다 메리 포핀스를 연기한 에밀리 블런트는 줄리 앤드류스의 오리지널에 (능가하진 못하더라도) 걸맞은 모습을 보여준다. <메리 포핀스 리턴즈>라는 제목처럼, 메리 포핀스의 귀환 만으로로 이 작품은 충분히 관람할 가치가 있다.

 E.T.A 호프만의 동화를 원작으로 하는 디즈니의 새 실사영화 <호두까기 인형과 4개의 왕국>을 조금 뒤늦게 관람했다. <초콜릿>, <개 같은 내 인생> 등으로 알려진 라세 할스트롬 감독이 연출을 맡았으나, 약 한 달 간의 재촬영을 <퍼스트 어벤저>의 조 존스톤 감독이 맡게 되어 크레딧에 공동 연출자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그동안 디즈니의 실사영화들은 원작이 되는 애니메이션을 숏 바이 숏 수준으로 옮기는 것에 불과했다면, <호두까기 인형과 4개의 왕국>은 <말레피센트>처럼 새로운 각색을 시도한다. 영화는 주인공을 원작의 마리에서 마리의 딸인 클라라(멕켄지 포이)로 바꾸고, 그에게 발명가라는 설정을 부여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한다. 영화는 마리가 유품으로 남긴 열쇠를 찾기 위해, 마리가 창조한 4개의 왕국의 세계로 떠난 클라라가 슈가 플럼(키이라 나이틀리)과 마더 진저(헬렌 미렌)의 대립을 막고 그 세계를 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선 영화의 각색이나 비주얼의 지향점은 좋다. 작년 개봉한 <미녀와 야수>의 실사영화에서 주인공인 벨에게 발명가 성격을 부여했다고는 했지만 원작을 그대로 옮기는데 급급해 이를 살리지 못한 반면, <호두까기 인형과 4개의 왕국>은 변화된 지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 지점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오프닝 시퀀스가 조금은 당황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멕켄지 포이의 연기는 이를 납득하게 만든다. 여기에 톱니바퀴 등 아날로그적 기계장치들이 주를 이루는 영화의 비주얼은 각색된 클라라의 면모와 적당히 어울린다. 발레로도 유명한 작품이기에, 디즈니의 걸작 중 한편인 <판타지아>를 연상시키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발레 장면 또한 좋은 선택이라 생각된다. 실제 발레리나와 발레리노로 활동하는 미스티 코플렌드와 세르게이 폴루닌 등이 출연하여 이 장면을 꾸미는데, 이야기의 전개를 시각적으로 적절하면서도 원작이 지닌 미덕을 잘 간직한 장면이었다.



 다만 감독이 바뀌고 많은 분량을 재촬영하면서 벌어진 일인지, 각색과 비주얼의 방향성은 좋으나 각본 자체에 문제점이 많이 보인다. 캐릭터의 변화와 성장이 급작스럽게 이어지고, 이를 설명해주는 적절한 대사나 상황들은 간단하게만 언급되고 지나가버리며, 이러한 각본 속에서 클라라의 발명가 기질이나 동화적인 비주얼은 온전히 기능하지 못한다. 결국 각색과 비주얼은 영화의 첫인상 정도를 만들어낼 뿐, 영화의 마지막까지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호두까기 인형과 4개의 왕국>이 <미녀와 야수>와 같은 원작의 복사품 밖에 안 되는 작품보다는 흥미롭게 느껴진다. 앞으로도 디즈니가 기존의 애니메이션들을 줄줄이 실사화 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미녀와 야수>나 <라이온 킹>의 예고편처럼 말 그대로 원작을 고스란히 실사화하는데 그쳐버린다면 디즈니에 대한 기대감은 그만큼 더 낮아질 것이다. 때문에 비록 완성도는 아쉽더라도, <호두까기 인형과 4개의 왕국>은 <말레피센트>와 함께 디즈니 실사영화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작품으로 흥미를 가지게 한다.




 <신데렐라>와 <정글북>으로 인해 본격화된 디즈니의 라이브-액션 필름 프로젝트의 신작,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을 관람했다. 어렸을 적 <곰돌이 푸>는 물론, 스핀오프 격의 작품인 <곰돌이 푸: 티거 무비>를 문자 그대로 비디오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반복했던 기억이 있기에, 그 기억을 국내 개봉명처럼 행복하게 다시 불러올 수 있을지 기대하며 극장을 찾았다.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는 원제인 <크리스토퍼 로빈>이 더욱 적절하게 영화의 내용과 주제를 설명하는 것 같다. 어릴 적 헌드레드 에이커 숲에서 곰돌이 푸(짐 커밍스), 티거(짐 커밍스, 1인 2역), 이요르(브래드 거렛), 피글렛(닉 모하메드) 등과 함께 놀던 크리스토퍼 로빈(유완 맥그리거)은 어느새 성인이 되었다. 에블린(헤일리 앳웰)과 결혼하여 딸 매들린(브론테 카마이클)을 낳고 살고 있는 로빈은 어느새 가장이 되고, 한 회사의 팀장이 되었다. 하지만 끝없는 업무에 가족도 자신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로빈. 어느 날 그의 앞에 푸가 다시 나타나면서 어릴 적의 모험이 다시 시작된다.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는 최근까지도 장편 혹은 TV용 애니메이션으로 명맥을 이어왔던 <곰돌이 푸> 시리즈의 첫 실사화이자, 나이 든 크리스토퍼 로빈을 다루는 시퀄 격의 작품이다. 디즈니에서 처음 <곰돌이 푸>의 장편이 제작된 게 1977년이니, 현재의 20대부터 50대까지의 폭넓은 세대가 <곰돌이 푸>를 어릴 때의 추억으로 공유하고 있을 것이다. 때문에 디즈니는 <월드워 Z>나 <스트레인저 댄 픽션> 등을 연출한 마크 포스터 감독을 고용하여, 기존의 이야기를 새롭게 짜는 방법 대신 무난하고 안전한 영화로 만들어냈다. 성인층 관객들의 추억을 자극하고, 그들의 손에 이끌려 극장을 찾을 어린 관객에게 ‘곰돌이 푸’라는 히트상품을 각인시키는 전략을 실현시키기 위해서일 것이다. 아쉽게도 이러한 전략은 절반의 성공만을 거둔다. 어느 정도 추억을 지닌 성인 관객층의 욕구는 곰돌이 푸와 친구들을 다시 스크린에 불러옴으로써 성공했을지 몰라도, 이 영화를 보고 새롭게 캐릭터에 빠져들 관객은 많지 않아 보인다.



 우선 예고편이 공개되었을 때부터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비주얼과 관련한 측면부터 살펴보자.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캐릭터들은 실제 배우의 모습으로 대체되거나(<말레피센트>, <신데렐라>), CG의 힘을 빌려 애니메이션과 유사한 외양을 보여주거나(<미녀와 야수>), 도리어 리얼한 자연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정글북>).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의 경우 로빈을 제외한 캐릭터들은 동물이다. 특히 로빈과 함께 모험을 떠나는 주요 캐릭터 넷은 봉제인형이다. 이들의 외양이 CG로 구현되는 순간 관객들은 기억하던 캐릭터들의 모습과의 괴리감을 느낀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에서 이러한 문제가 바로 드러나는데, 기숙학교로 떠나는 로빈을 배웅하는 동물 친구들이 티파티를 벌이는 장면은 머펫 쇼와 CG 캐릭터 중간에 있는 어중간한 모습으로 그려져 흡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괴상한 티파티 장면과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게다가 영화 전체의 우중충한 톤은 괴상함을 더해준다. 영화의 스틸컷을 보고 <살인의 추억>이 떠오른다는 어느 트위터리안의 이야기는 영화를 보고 난 후 더욱 납득하게 된다. 물론 이야기가 진행되고, 캐릭터의 외양에 익숙해지면서 괴리감은 줄어들지만, 아무래도 기존 애니메이션 속 외양을 상상하며 영화를 보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영화의 캐릭터 외양 묘사는 아쉽기만 하다.



 또 하나의 아쉬움은 이야기다.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는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도 쉽게 예측 가능한 작품이다. 주인공이 푸가 아닌 크리스토퍼 로빈이라는 점에서 이미 예견됐던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나이 들고 업무에 찌든 크리스토퍼 로빈이 곰돌이 푸와 친구들을 다시 만난다는 이야기에서 어떤 새로움과 재미를 느낄 수 있을까? ‘가부장’ 크리스토퍼 로빈의 이야기는 이미 수많은 영화들에서 봐온 것이고, 동물 친구들과의 재회가 주는 감흥은 지루할 정도로 익숙한 이야기 속에서 쉽게 휘발되어 버린다. 특히 업무에 치여 가정을 돌보지 못하는 가부장을 다독여주는 서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너무나도 지겹게 봐온 이야기다. 차라리 로빈이 동물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딸에게 해주고, 우연히 동물친구들을 만난 딸이 새로운 모험을 한다는 이야기가 더욱 흥미로웠을 것이다. 뻔하디 뻔한 결말, 즉 가부장의 지위를 회복하고 정상가족의 완전한 형태를 이야기하는 결말로 치닫는 후반부는 (안 좋은 의미로) 80~90년대 디즈니 가족영화들을 연상시킨다. 이 영화가 그만큼 낡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는 익숙한 이야기를 다시 포장하고 재생한 해낸 것이 불과하다. 똑같이 익숙한 이야기지만 화려한 영상으로 스크린에 복귀한 <정글북>이나 <미녀와 야수>, 이야기를 비틀어 새로움을 추구한 <말레피센트> 등이 쌓은 디즈니 라이브-액션 필름에서 이 영화는 진부한 이야기만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영화를 보면서 어렸을 때 봤던 <곰돌이 푸>의 추억이 떠오르긴 했지만, 어디선가 <곰돌이 푸>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상영한다면 이번 영화 대신 차라리 그곳을 가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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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포함


 픽사의 19번째 장편영화 <코코>는 역대 픽사의 작품 중 가장 디즈니스러운 작품이 아닌가 싶다. 물론 픽사의 작품들이 디즈니가 다뤄오던 가족주의를 놓지 않은 적은 없다. 다만 그것의 형태는 <토이스토리> 속 장난감들의 연대나 <몬스터 주식회사>의 종족을 뛰어넘는 유사 부녀관계와 세대격차를 넘는 <업>의 유사 부자관계, <니모를 찾아서> 속 이방인 및 장애인과의 연대, 결국 가족으로 회귀하는 <인사이드 아웃>의 엔딩. 결국 픽사, 그리고 디즈니가 표방하는 가족주의는 조금 거칠게 말해서 <분노의 질주> 시리즈 속 ‘Familism’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다만 픽사는 그것을 더욱 영화적으로, 새로운 소재를 통해 독창적으로, 그리고 아름답게 담아내는 능력을 지닌 곳이다. <인크레더블> 정도를 제외하면 픽사엔 가족을 전면으로 내세운 영화는 없지만, 그만큼 자신들의 테마를 표면적으로는 은폐하면서 감정적으로는 진하게 전달하는 내공을 쌓아왔다는 이야기로 볼 수 있다. <코코>는 <인크레더블> 이후 처음으로 가족이 주인공인 픽사의 영화다. 주인공인 멕시코 소년 미구엘(안소니 곤잘레스)은 가족을 버리고 떠난 음악가 고조할아버지 때문에 음악이 금지된 집안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그는 마을 출신의 유명한 뮤지션 델라크루즈(벤자민 브랫)를 흠모하며 몰래 뮤지션의 꿈을 키워간다. 우연히 델라 크루즈가 자신의 고조할아버지일지도 모른다는 증거를 발견한 미구엘은, 그의 무덤에 걸린 기타를 훔쳐 음악 경연대회에 나가려 한다. 그러나 미구엘이 기타를 치는 순간, 미구엘은 산채로 사후세계에 가게 된다. 미구엘은 그곳에서 의문의 남자 헥터(가엘 가르시아 베르날)를 만나고, 사후세계에서의 모험을 시작한다.



 미구엘이 사후세계에서 만나는 것은 당연하게도 죽은 가족들이다. 미구엘은 고조할머니 이멜다(알리나 우바치)를 만나고 그의 축복을 받아 이승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뮤지션인 남편이 가족을 버리고 떠난 것을 증오하는 그는 미구엘이 음악을 그만둘 것을 조건으로 내건다. 때문에 미구엘은 자신의 고조할아버지일 것으로 여겨지는 델라 크루즈에게 축복을 받아 이승으로 돌아가려 한다. 이러한 대립 구도는 굉장히 도식적이다. 픽사는 그간 애니메이션 속에서 범죄, 액션, 스릴러, 호러, 멜로드라마 등 다양한 영화의 클리셰 또는 직접적으로 장면을 가져와 활용했지만, <코코>에서는 그것이 유독 도식적으로 느껴진다. 가령 처음 공연하는 미구엘의 노래에 당연하다는 듯이 환호를 보내는 관객들과 헥터와 자연스럽게 협연하는 모습 등에서 이러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이러한 기시감은 자신의 꿈과 가족 사이에서 갈등한다는 가족 멜로드라마의 흔하디 흔한 설정에서도 이어진다. 어쩌면 이번 영화에 이르러서, 픽사는 더 이상 새로운 소재를 통해 독창적인 방식으로 가족주의를 포장하려는 시도를 멈추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픽사 특유의 반전 서사(그 사람이 선한 영웅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악당이었어! 그리고 보잘것없는 옆자리 누군가가 진짜였어!)는 <코코>에 들어서면 적극적으로 가족을 강조하는 데 사용된다. 장난감, 감정, 물고기, 몬스터 등을 소재로 삼아온 픽사가 현실 전통에 기반을 두고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코코>의 멕시코식 사후세계를 그려냈다는 점 또한 그렇다. 어쩌면 디즈니가 <겨울왕국>의 자매애, <모아나>의 여성 영웅 등으로 남성 중심 세계관과 가족주의를 조금씩 덜어내는 것에 대한 반동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픽사는 익숙한 가족주의 서사를 세련된 신파로 직조해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스튜디오다. 이것은 단순히 3D 애니메이션으로 영화 속 인물과 배경을 실사에 가깝게 그려내는 기술력이나, 아름다운 사후세계의 풍광을 그려내고 기억에 남을 귀엽고 예쁜 캐릭터들을 만들어내는데 그치지 않는다. 픽사는 <토이 스토리> 시리즈나 <월 E> 등의 작품을 통해 <싸이코>나 여러 서부극,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등의 영화를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변주하고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코코> 역시 이러한 모습을 드러낸다. 영화 속 영화로 등장하는 델라 크루즈의 영화들은 20세기 초반에 등장한 B급 할리우드 서부극 혹은 액션 영화들을 연상시키며, 후반부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뮤지컬 액션 시퀀스는 <007> 시리즈 등의 첩보 액션물에서 보아온 리듬감을 선보인다. 또한 히스패닉계 미국인과 이민자들을 의식한 듯 멕시코의 명절인 망자의 날에 대한 섬세한 고증과 그 문화를 존중하는 태도를 갖춘 것은 <코코>가 지닌 최고의 미덕 중 하나일 것이다. 동시에 망자의 날이라는 문화가 한국의 추석을 연상시키기도 해 익숙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코코>는 관객보다 영화가 먼저 울며 주접떠는 지루한 신파극과는 달리, 다소 도식적인 가족주의를 깊고 진하게 전달한다.



 <코코>를 비롯한 픽사의 작품을 단순한 상품으로 남게 하지 않는 부분은 각 영화가 지닌 영화적인 순간들에서 비롯된다. 특히 <코코>에서는 악당의 실체가 영화 속 카메라로 촬영되어 영화 속 스크린으로 생중계되며 폭로된다는 점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이러한 방식을 픽사의 작품에서 처음 만나는 것은 아니다. <코코>의 연출자인 리 언크리치의 장편 데뷔작인 <몬스터 주식회사>는시뮬레이션 룸을 통해 비슷한 상황을 연출해 냈으며, 픽사의 다른 작품인 <월 E> 또한 함장실의 카메라를 통해 기계장치의 음모를 우주선내 승객들에게 폭로하는 전략을 선보였다. <토이 스토리 2>의 TV CF나 <토이 스토리 3>의 CCTV, <인사이드 아웃>에서 감정들이 라일리와 시각을 공유하는 스크린 역시 유사한 전략을 위해 기능한다. 이러한 장치들은 대부분 아이 혹은 아이를 보호 내지 공유하는 존재들(미구엘의 사후세계 가족, 몬스터, 아이들처럼 무력해진 승객들의 함장 앤디의 장난감, 라일리의 감정들)에 의해 구현된다. 이 장치들은 소위 ‘어른의 세상’이라 일컬어지는 동심 밖의 세계를 관객에게 폭로한 뒤, 보호자에 의해 대상을 구해내면서 다시금 그러한 폭로를 봉합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이미 그 세상을 봤고, 서사는 이를 통한 그들의 성장을 그려내며 막을 내린다. 보호자와 보호대상이 모두 아이들이 아닌 혹은 서사의 주인공이 보호자이거나 그와 동일시되는 몇몇 작품(<토이 스토리 3>, <월 E>, <인사이드 아웃>)이 픽사의 걸작으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때문에 <코코>는 앞선 걸작들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채 서사 속 가족주의를 봉합하는데 그칠 뿐이다. 



 <코코>는 분명 뛰어난 작품이다. “역시 픽사”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서사는 매끄럽게 흘러가고, (몇몇 관객이 부르짖는) 개연성의 구멍 따위는 찾아보기 힘들며, 섬세한 고증을 통해 만들어진 멕시코식 사후세계의 아름다움은 디즈니의 <라푼젤>이나 <겨울왕국> 등의 작품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여기에 ‘Remember Me’로대표되는 OST 또한 <코코>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가사를 통해 서사를 진행시키는 정통 뮤지컬 영화는 아니지만, <코코>는 뮤지션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음악영화로서도 훌륭하다. 다만 영화가 담고 있는 도식적인 가족주의 서사는 아쉬움을 남긴다. (유사)부자관계, 강아지(혹은 동물)의 동행, 영웅으로 묘사되던 인물의 반전 등은 <업>을 비롯한 픽사와 디즈니의 작품에서 수 차례 반복되어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토이 스토리 3>와 <인사이드 아웃>을 제외하면 최근 몇 년간의 픽사의 영화들은 아쉽게만 느껴진다. <도리를 찾아서>와 <몬스터 대학교>는 (어쩌면 당연하게도) 전작의 벽을 넘지 못했고, <카> 시리즈는 여전히 픽사 작품 중 가장 아쉬운 시리즈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으며, <굿 다이노>는 아름다운 이미지와 놀라운 기술력만이 남은 범작이었다. <코코>는앞선 범작들과 걸작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고, 동시에 픽사-디즈니의 장편 애니메이션들이 공유하는 지점과 한계점을 뚜렷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앞으로 개봉 예정인 픽사의 작품은 <인크레더블 2>와 <토이 스토리 4>이다. 과연 픽사는 <코코>가 드러낸 진부함을 넘을 수 있을 것인지, 혹은 여기서 머물고 말 것인지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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