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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평적으로 큰 성과를 올린 애니메이션 <페르세폴리스>의 공동연출자이자 원작 그래픽노블을 쓴 마르얀 사트라피의 2014년 연출작 <더 보이스>가 뒤늦게 한국에 개봉했다.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제리(라이언 레이놀즈)를 둘러싼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공장 노동자인 제리에겐 동료들은 모르는 어린 시절의 비밀이 있다. 게다가 그는 종종 자신이 기르는 개 그리고 고양이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어느 날 공장 경리부의 피오나(젬마 아터튼)를 보고 첫눈에 반하지만, 사고로 인해 그를 죽이게 된다. 이후 제리는 이를 모르는 다른 경리부 직원 리사(안나 켄드릭)와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어느 날 리사가 제리의 비밀을 알게 된다. 싸이코 연쇄살인마의 속내를 다룬다는 점에서 TV시리즈 <한니발> 등의 작품들이 연상되기도 한다. 하지만 라이언 레이놀즈나 안나 켄드릭 등의 캐스팅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 코미디의 톤을 띈 초반부와 밝은 톤의 이미지들이 영화를 채우고 있다. 




 <더 보이스>는 상당히 애매한 작품이다.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싸이코 살인마의 심리상태를 설명하기 위한 장치들, 가령 학대당하던 어린 시절이나 어머니(발레리 코흐)의 죽음에 대한 기억, 정신분열증적인 상태를 강조하기 위한 집의 두 모습 등은 기대보다 잘 연출되어 있다. 그러나 그가 살해하는 대상이 모두 여성이라는 점, 그리고 그것이 다소 유아적으로 그려지는 제리의 성격을 묘사하는데 할애되어 있다는 점은 아쉽기만 하다. 극 중 등장하는 여성들은 모두 제리의 상태를 설명하기 위한 재료로 소비되고 만다. 이러한 장치는 종종 효과적이기도 하지만 대게 남성 주인공을 관객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여성 캐릭터를 착취한다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다. 리사와 피오나뿐만 아니라 어머니와 정신과 상담사인 워렌(재키 위버) 캐릭터 또한 제리를 설명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기능한다. 게다가 엔딩크레딧과 함께 등장하는 <더 보이스>의 다소 어처구니없는 해결은 여성 캐릭터들을 그저 소비했다는 비판을 더욱 강화시킨다. 라이언 레이놀즈와 안나 켄드릭 등 출연진의 호연과 시퀀스 단위로는 꽤나 만족스러운 연출에 비해 손쉬운 방식으로 제리라는 캐릭터를 이해시키려 한 각본이 아쉽기만 하다.



 <데드풀>이나 <킬러의 보디가드> 등으로 만들어진 라이언 레이놀즈의 이미지 덕분에 <더 보이스>는 슬레셔 코미디로 홍보되고 있다. 포털 사이트의 영화 정보란에도 코미디 장르로 분류되어 있다. 하지만 <더 보이스>는 코미디 보단 싸이코 드라마에 가깝다. 제리의 분열된 심리상태를 드러내는 몇몇 장면들은 꽤 탁월하다. 제리의 반려동물들이 건네는 말들은 코미디의 톤을 지니긴 했지만 도리어 그의 심리상태를 다각도로 드러내게 된다. 동시에 제리에 의해 살해된 여성들이 유사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영화의 한계가 명확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각본이 조금 더 섬세했다면, 조금 더 철저했다면 수작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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