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시지마 히데토시' 태그의 글 목록 :: 영화 보는 영알못

<토니 타키타니>의 카메라는 끝없이 수평으로 트래킹한다. 토니 타키타니(오가와 잇세이)라는 인물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보여주는 초반부를 지나면, 일러스트레이터로 성공한 그가 “그림에 감정이 없다”는 말에 외로움 속으로 빠져드는 과정이 등장한다. 여기서 그를 담아내는 방식은 항상 같은 높이, 같은 속도,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움직이는 수평 트래킹이다. 영화는 토니 타키타니의 삶을 섬세하게 담아내려고 하지 않는다. 강물처럼 무한히 흘러가는 트래킹을 통해 슬쩍 엿볼 수 있을 뿐이다. 계속 흘러가는 트래킹 속에서 관객은 일러스트레이터인 토니의 작업물을 볼 수도 없고, 몇몇 장면에서는 그의 표정조차 제대로 확인할 수 없다. 컷이 바뀌어도, 장소나 시간이 바뀌어도 카메라는 꿋꿋하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흘러간다. 필요한 설명은 (영화 속에서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 내레이터(니시지마 히데토시)의 내레이션을 통해 제시된다. 종종 토니 타키타니를 비롯한 인물들이 내레이션의 처음과 끝을 가로챈다. 이는 강줄기 중간중간에 놓인 돌이 강물이 흐르는 모양새를 만들어내듯, 끝없이 흐르는 트래킹의 흐름을 잡아준다.



 트래킹은 토니가 에이코(미야자와 리에)를 만나게 되면서 멈춘다. 흘러가는 트래킹 속에 어느 샌가 합류한 에이코는 목적지도 없이 흘러가기만 하던 토니를 멈춘다. 어느 밤 공원에서 둘이 사랑에 빠지게 된 장면부터 앞과 같은 기나긴 트래킹은 등장하지 않는다. 카메라는 멈춰서 토니와 에이코의 얼굴을 담아낸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하며 둘의 일상을 담아내기도 한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향하는 트래킹은 토니가 아닌 에이코의 발에서 다시 시작한다. 토니는 옷을 좋아하는 에이코를 위해 수많은 옷과 신발을 수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카메라는 가게와 옷 방을 드나드는 에이코의 발을 트래킹으로 잡아낸다. 카메라의 움직임은 (에이코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레이션을 가로챈 직후인) 에이코의 자살 이후 다시 토니에게 넘어간다.



 그 사이에 히사코(미야자와 리에가 1인 2역을 했다)가 등장한다. 히사코는 토니가 낸 광고를 보고 그를 찾아온다. 토니는 에이코가 남긴 수많은 옷과 신발을 입고 신어줄 사람을 찾고 있다. 카메라는 토니를 찍을 때는 움직이고, 히사코를 찍을 때는 멈춘다. 히사코는 마치 토니를 멈출 수 있는 정착지처럼 느껴진다. 카메라가 더 이상 트래킹하지 않는 것은 히사코가 옷 방에 주저앉아 우는 장면에서부터이다. 히사코는 자살 직전의 에이코처럼 내레이션을 가로챈다. 다른 내레이션들과 다르게 히사코가 가로채는 부분은 직후에 일어날 히사코와 토니의 대화를 예견한다. 이 때 카메라는 76분의 러닝타임 중 가장 오랜 시간 정지해있다. 히사코의 내레이션이 토니와의 대화를 예견했듯, 멈추어버린 카메라는 더 이상 누구를 담아내더라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걸 예견하는 것만 같다. 토니는 결국 히사코에게 다시 찾아오지 않아도 된다 이야기하고, 옷 방에 옷들을 모두 헌옷으로 팔아버린다. 텅 빈 옷 방에 홀로 남은 그는 그곳에서 울던 히사코를 떠올리고 다시 전화하려 하지만, 결국 수화기를 내려 놓는다. 토니는 결국 종착지를 발견한 것일까? 지겨울 정도로 토니의 삶을 따라다니던 트래킹이 멈춘 곳은 어떤 종착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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