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성' 태그의 글 목록 :: 영화 보는 영알못

*스포일러 주의


 <공조>를 통해 예상외의 흥행성적을 거둔 김성훈 감독이 현빈과 함께 새로운 작품을 촬영했다. <창궐>은 병자호란 이후의 조선을 배경으로, 조선에 야귀(좀비)떼가 창궐한다는 소재를 담고 있다. 영화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대부분의 영화들이 따르는 이야기를 고스란히 따라간다. 왕(김의성)을 죽이고 왕위에 오를 음모를 꾸미던 김자준(장동건)이 야귀떼를 통해 계획을 실현하고, 때마침 청나라에서 돌아온 강림대군(현빈)이 이를 저지하려 고군분투한다는 내용이다. 때문에 <창궐>은 독특한 소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익숙한 이야기만을 답습하며 마무리될 뿐이다. 이러한 조선시대 배경 충무로 사극들의 관습이야 말로 야귀떼보다 무서운 고질병이 아닐까 싶다.



 매해 여러 편의 조선시대 배경 사극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대자본이 들어간 영화들의 내용은 대체로 비슷하다. 대역배우를 데려다 왕을 연기하도록 시키던, 관상을 보거나 풍수지리를 끌어오던, 전쟁을 치르던, 괴물이나 야귀떼가 궁궐까지 쳐들어오던 모든 이야기는 왕권 다툼을 그려내는 것에 그치고 만다. 아무리 참신한 소재를 들고 와도 조선, 특히 한양 도성이라는 배경 안에서 모든 이야기는 왕권 다툼으로 귀결된다. 때문에 어떤 영화를 봐도, 어떤 소재를 봐도 기시감이 들 수밖에 없다. 더욱이 <창궐>은 바로 한 달 전에 개봉한 <물괴>와 거의 동일한 시대, 유사한 소재, 궁궐이라는 배경을 공유한다. 때문에 두 영화의 이야기는 거의 동일하게 느껴진다. 이들은 거의 모든 소재를 왕권 다툼을 통한 사회비판에의 비유에 소비해버리는데, 때문에 장르적 쾌감은 대부분 희석되어버리고 지겨움 만이 남게 된다. <창궐>의 경우 <물괴>보다 영화적 완성도는 나은 편이나, <부산행>과 별반 다르지 않은 좀비들의 움직임과 디자인, 영화 스스로도 하질(저질)이라 평하는 유머 코드, 불필요한 플래시백으로 점철된 한국 상업영화 특유의 편집까지 대부분의 면에서 크게 다를 바 없다.



 또한 이러한 영화들이 참된 왕의 상을 담아내려 한다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아마도 <광해, 왕이 된 남자>가 천만 관객을 동원한 이후 퍼진 경향으로 생각되는데, <대립군>, <물괴>, <명당> 등 최근 개봉한 조선시대 배경 사극들 또한 이러한 경향을 공유한다. 대부분의 작품이 그저 추상적인 리더상을 그려낼 뿐이지만, <창궐>은 꽤나 직접적으로 현재의 정권을 연상시킨다. 영화 거의 마지막 장면, 궁궐의 야귀떼를 물리치고 김자준을 해치운 강림대군은 근정전 지붕 위에 앉아 횃불을 들고 몰려온 민초들을 바라본다. 이 모습은 마치 2016년 광화문 촛불집회를 광화문 위 혹은 청와대에서 바라본 구도를 연상시킨다. 이 장면에서 강림대군은 “늦어서 미안하네”(정확한 대사는 아니지만 이러한 내용의 대사)라는 대사를 내뱉는다. 명백히 왕권 국가인 조선을 배경으로 현재의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섬세함이 필요하다. 무조건적으로 올바른 리더의 모습을 치켜세우는 것은 일종의 우상화일 뿐이다. <물괴>는 적폐 정권을 갈아치우기 위해 벌어졌던 촛불집회가 마치 새로운 왕을 세우기 위해 벌어진 것처럼 그려낸다. 늦게 왔다는 강림대군의 대사는 이미 왕이 될 사람이 결국 왕이 되었고, 이를 당연하게 촛불집회의 이미지와 연관시킬 수밖에 없는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지금의 대통령을 떠올린다. 어설픈 프로파간다는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 때문에 <창궐>이라는 영화의 정치적 태도는 유사한 이야기를 지닌 다른 영화들보다도 구차하게 느껴진다. 


p.s. 영화의 엔드크레딧에 작년 세상을 떠난 김주혁의 이름이 특별출연으로 올라온다. 김주혁은 강림대군의 형인 세자 역할을 맡았으나, 촬영을 마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고, 그 역할은 김태우가 다시 촬영하여 영화가 완성되었다. 비록 영화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창궐>은 김주혁 배우의 정말 마지막 작품이 되는 셈이다.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벌어진다면?’ ‘북한에서 쿠데타가 일어난다면?’ 한반도와 그 인근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이 생각해봤을 법한 상상이다. <변호인>으로 천만의 맛을 봤던 양우석 감독의 신작 <강철비>는 이러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다. 2011년 양우석 감독은 북한의 쿠데타와 핵전쟁 위기를 담은 웹툰 『스틸레인』의 스토리를 쓴 경험이 있다. <강철비>와 『스틸레인』의 주인공과 이야기는 조금 다르지만, 『스틸레인』을쓸 때 쌓은 정보와 경험을 바탕으로 <강철비>가 완성될 수 있었다. 영화의 배경은 지금의 한국, 이제 막 남한의 대선이 끝난 시점이다. 북한의 은퇴한 군인 엄철우(정우성)는 군부의 리태한(김갑수)에게서곧 쿠데타가 벌어질 것이라며 그의 원인이 되는 인물들을 암살할 것을 명령받는다. 엄철우는 명령을 받고 개성으로 향하지만, 개성에 도착한 것은 북한의 1호. 거기에 쿠데타가 발생하여 개성은 미사일 공격을 받게 되고, 엄철우는 얼떨결에 북한 1호를 데리고 남한으로 피신한다. 엄철우가북한 1호를 치료하기 위해 찾은 병원이 우연히도 청와대 외교수석인 곽철우(곽도원)의 전 부인이 운영하던 곳이었고, 남한 측에서 북한 1호를 보호하게 된다. 그러던 와중 쿠데타가 벌어진 북한은 남한에 선전포고를 하게 되고, 이참에 핵으로 전쟁위협을 제거해야 한다는 대통령 이의성(김의성)과 통일을 생각하면 핵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의견인 당선인 김경영(이경영)이 대립한다.



 <강철비>는 딱 현재의 한반도 정세를 담아낸 영화이다. 기존의 영화들이 남한과 북한에 인물, 여기에 미국 혹은 중국의 인물들을 짧게 끼워 넣었다면, <강철비>는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다양한 국가의 입장까지 담아낸다. 청와대 외교수석인 곽철우가 CIA나 중국 외교부 등과 정보를 교환하며 정세를 파악하고, 한반도 위에서 핵이 터지는 것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과정 또한 꼼꼼하고 납득 가능하게 묘사된다. 북한에서 쿠데타가 벌어지고, 북한 1호가 의식불명 상태로 남한에 내려오게 된다는 과감한 상황을 기대보다 설득력 있게 묘사한다는 것이 <강철비>와『스틸레인』, 양우석 감독이 직접 쓴 각본의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때문에 <강철비>를 보는 것은 언뜻 어떤 작가의 소설을 읽는 것과 유사한 느낌을 준다. 영화는 한반도 정세와 역사를 바탕으로 다양한 음모론을 실제 역사와도 같은 꼼꼼함으로 풀어낸 김진명 작가의 소설과 같다. 북핵 문제를 직접적인 소재로 삼은『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나 『나비야 청산가자』, 제목 그대로 사드 문제를 둘러싼 이야기를 그린 『THAD』와 같은 소설과 영화 <강철비>는 상당히 유사한 결을 지니고 있다. 영화는 김진명의 소설처럼 한국, 북한, 미국, 중국 등이 북한 1호의 상태와 쿠데타, 북핵 등의 정보를 두고 벌이는 논쟁들과 대선이라는 이벤트와 맞물리는 남한의 핵무장에 관한 의견 차이, 분단과 핵전쟁위기 사이에서 살아가는 일반 시민들의 모습까지 나름 생생하게 묘사한다. 여기에 <변호인>에서 드러났던 양우석 감독 특유의 휴머니즘, 블록버스터 다운 액션(엄철우와 북한 암살요원 최명록(조우진)의 몇몇 액션은 <존 윅> 같은 근접 총기 액션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퀄리티에 대한 의문은 남지만)으로 양념을 한 작품이 바로 <강철비>이다.



 때문에 <강철비>는 현재 시점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낡고 익숙한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강철비>는 분명 한국전쟁부터 현재 시점의 이르는 남북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낸 영화 중에서도 가장 세세하고 현실적인 묘사를 보여준다. 동시에 그렇기에, 전쟁 불감증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의 관객들에겐 또 하나의 익숙하고 오래된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 제작의 시기상 어쩔 수 없는 한계점이기도 하지만, 탄핵정국(영화가 겨울의 대선에서 시작하는 것은 분명 올해 12월 이었었어야 할 대선을 노린 것이다)과 트럼프의 미국이 반영되지 못했다는 것 또한 아쉬운 점이다. 박정희 정권 때부터 현재의 사드 문제까지 이어지는, 북핵을 놓고 오랜 기간 이어지는 대립의 역사는 다소 지겹게 느껴진다. 여기에 휴머니즘을 녹여내기 위해 집어넣은 몇몇 장면들, 가령 함께 수갑을 차고 국수를 먹는 두 철우라던가아재개그를 치는 장면, 지드래곤의 노래를 기어이 두 번이나 삽입하는 것 등의 장면들은 140분의 긴 러닝타임을 더욱 늘어지게 만든다. 또한 전반부 북한의 쿠데타 과정에서 등장하는 교차편집이 큰 긴장감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도 아쉽다. <변호인>의 법정 장면이 송강호라는 괴력의 배우의 능력에 힘입어 긴장감과 감동을 자아냈다면, <강철비>의 장면들은 그 정도의 괴력을 지닌 배우가 없고 편집만으로 이를 만들어내기엔 아직 감독의 역량이 조금 부족해 보인다. 쿠데타와 핵전쟁, 남한으로 피신한 북한 1호 등의 상상은 모두의 상상임과 동시에 지겨워진 상상이다.



 <강철비>는 남한의 핵무장이라는 이슈에 대해 놀랍도록 중립을 유지한다. 대통령과 당선인 두 캐릭터는 각각 핵무장 찬성과 반대로, 전시상황에서의 핵공격 찬성과 반대로 갈라서서 대립한다. “분단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보다 분단을 이용하는 것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는다.”는 곽철우의 대사처럼, <강철비>는 전쟁과 핵을 정치와 이익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벌어지는 사건이다. 영화는 140분 러닝타임 내내 그 중립을 유지하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에 가선 결국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어쩌면 한국 상업영화의 고질병과도 같은 ‘굳이 없어도 될 것 같지만 들어가는 에필로그’를 넣기 위한 선택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결과적으로 두 개의 입장중 어느 한쪽으로 수렴하는 결말을 맞게 된 엔딩을 통해 영화와 양우석 감독은 한쪽에 입장에 가까이 서게 된다. 때문에 <강철비> 또한 분단의 상황 사이에서 태어난, 155억 원의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만들어낸 상품으로만 느껴진다. 상업영화라는 틀을 벗어날 수 없는 정도의, 딱 그 정도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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