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전> 김진원 2018
단편영화로 이름을 알린 미정(서예지)은 상업영화 입봉을 위한 공포영화 시나리오를 집필 중이다. 영화제작사로부터 극장을 배경으로 한 공포영화를 주문받았지만, 생각보다 시나리오가 잘 풀리지 않고 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한 영화과 졸업 상영회에서 귀신이 찍은 영화가 상영됐고, 사람들이 겁에 질려 도망쳤던 적이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수소문 끝에 미정은 그 영화의 감독으로 이름이 올라가 있는 재현(진선규)을 찾아내지만, 재현은 자신의 영화 <암전>을 잊어버리라는 말만 계속한다. 하지만 미정은 점점 그 영화에 집착하게 된다. 공포영화에 대한 영화라고 할 수 있는 <암전>은 장편 데뷔작인 <도살자>를 통해 본격적인 고어-슬래셔 영화를 만들었었던 김진원 감독의 11년 만의 신작이다. 존 카펜터의 <매드니스>와 <담배 자국>의 영향이 영화 곳곳에 보이는 이번 영화 또한 여러 호러 영화(특히 슬래셔 장르)에 대한 김진원 감독의 애정고백이나 다름없다.
사실 <암전>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미정이 소문 속의 영화 <암전>을 찾아가는 초반부였다. <암전>이 상영됐었던 대학을 찾아가고, 그곳의 학생들에게 영화의 존재를 물어보고, 국내 최대의 장르영화제인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아카이브를 찾아가는 장면은 한국의 씨네필들이 간절히 보고 싶었던 영화를 찾기 위해 돌아다니는 경로와 유사하다. 어쩌면 김진원 감독 본인이 보고 싶어 하던 영화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수소문했던 경험을 고스란히 영화에 녹여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와 별개로 술자리에서 크리스토퍼 놀란과 드니 빌뇌브에 대한 찬양을 멈추지 않는 연출전공 남학생들의 모습은 갑작스럽게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암전>은 이렇게 현재 한국에서 영화를 제작하고 있는, 갓 영화과를 졸업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음을 꽤나 공들여 묘사한다. 이러한 묘사들은 미정이 재현을 만나고 나서부터 시작되는 영화 속 영화 <암전>에 대한 공포가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오도록 유도한다. 재현이 연출한 <암전>이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그 영화가 촬영된 폐극장은 어떤 공간인지 영화는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영화의 메이킹 필름이라는, 일종의 파운드 푸티지의 형식을 빌려와 그 상황을 보여주고, 단숨에 그 상황 안으로 미정을 밀어 넣는다. <암전>을 추적하던 미정을 쫓아가던 관객들은 미정과 함께 곧바로 영화의 하이라이트로 들어서게 된다. 이는 영화에 대한, 극 중 “공포영화가 나를 구원했어요”라는 재현의 대사로도 드러나는, 애정을 넘어선 시네’필리아’적 집착의 한 복판으로 관객을 동참시키는 것이다. 영화 곳곳에서 플래시백으로 삽입되는 미정의 트라우마는 관객의 동참을 매끄럽게 만들기도 한다. 때문에 여러모로 관객들이 쉽게 몰입할 수 있는 각본 속에서 ‘한’을 품은 귀신, 파운드 푸티지 호러, 슬래셔 등 다양한 요소들을 자연스럽게 공존하게 된다.
<암전> 속에는 두 편의 <암전>이 더 있다. 하나는 재현이 연출한 ‘귀신이 만든’ <암전>이고, 다른 하나는 미정이 연출하게 된 <암전>이다. 결국 관객들은 세 편의 <암전>을 보게 되는 셈이다. 영화 속 영화라는 설정은 꽤나 흔하게 등장한다. <암전>은 이 설정을 영리하게 활용한 예시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와 영화와 영화라는 다층적인 레이어는 귀신, 슬래셔, 파운드 푸티지 등의 요소들이 각각의 기능을 다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준다. 관객들은 미정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영화와 영화와 영화 사이를 오가게 되고, 영화의 하이라이트의 다다라서는 여러 겹의 레이어가 하나로 합쳐지게 된다. 그 상황을 빠져나가지 못하는 미정이 느끼는 공포, 그리고 재현에서 미정으로 옮겨온 집착이 <암전>을 완성한다. 이 과정을 충실하게 영상으로 옮기면서도 집중력을 잃지 않는 것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