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소마> 아리 애스터 2019
<유전>으로 강렬한 장편 데뷔를 치른 아리 애스터 감독의 신작 <미드소마>가 개봉했다. 여러 오컬트 영화의 계보를 잇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스웨덴의 컬트를 소재로 한 <미드소마>에 대한 팬들의 기대치 또한 높았다. 영화는 대니(플로렌스 퓨)가 사고로 부모님과 여동생을 잃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의 남자친구인 크리스티안(잭 레이너)은 대학 동료이자 친구들인 조쉬(윌리엄 잭슨 하퍼)와 마크(윌 폴터)와 함께, 스웨덴 출신인 친구 펠레(빌헬름 브롬그렌)의 고향으로 학술답사 겸 여행을 떠나기로 하고, 대니 또한 이곳에 동행하기로 한다. 펠레의 고향인 호르가에서는 90년에 한 번 열리는 9일간의 하지(midsomar)축제가 막 열릴 참이다. 하지의 백야 때문에 해가 지지 않는, 24시간이 백주 대낮인 그곳에서 벌어지는 축제는 어딘가 이상하다. 대니와 그의 일행들은 축제 한가운데서 혼란스러워하기 시작한다.
아리 애스터는 <미드소마>를 <유전>과 함께 ‘트라우마 2부작’으로 묶어 설명했다. 전작은 딸/여동생의 죽음이라는 트라우마가 운명론적인 오컬트 세계관으로 빨려 들어가는 작품이었다. 반면, <미드소마>는 대니의 트라우마가 운명론적으로 극복되고, 더 나아가 치유되는 과정을 담아낸다. 호르가 마을의 하지축제가 보여주는 아름다우면서도 기괴한 비주얼은 스웨덴 하지축제를 기반으로 룬 문자, 이집트 민간신앙 등 세계 곳곳의 신화와 전통설화 등의 요소들이 뒤섞여 구성된다. 복잡하게 읽힌 다양한 신화들의 차용 속에서, 호르가 마을의 잔인한 의식들은 대니의 트라우마를 자극한다. 동시에 그 자극을 통해 대니는 그 트라우마가 지속되는 이유를 서서히 발견하기도 한다. 물론 이 과정을 대니가 주도적으로 실행하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대니는 마을 사람들에게 휘둘린다. 이렇다 할 설명도 없이 다양한 의식과 행사들이 치러지고, 사람의 머리가 박살 나는 장면을 목격하거나 환각제가 든 음료를 마셔야 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하지만 결국 대니는 호르가에 머무른다. 호르가 마을의 잔인한 전통을 가장 먼저 눈치챈 조쉬, 마을을 연구대상으로만 바라본 채 자신의 여자친구를 신경 쓰지 않는 크리스티안, 스웨덴의 여다. 자들을 밝히기만 하며 전통에는 관심도 없는 마크, 이들은 모두 대니를 갑작스레 여행에 동행하게 된 불청객으로 여기고, 호르가 마을을 각자의 방식으로 대상화한다. 어쩌면 대니만이 그곳의 사람들과 무엇인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유일한 외부인이었을지도 모른다.
호르가 마을 사람들에겐 18년이 4번 반복되는, 마치 사계절 같은 인생의 주기가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주기를 따라 인생을 살아간다. 태어난 순간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마을 사람들의 삶은 결정되어 있다. 이들의 삶은 <유전> 속 가족들의 삶과 유사하다. 이들은 할머니를 통해 결정된 삶을 살아가고, 그 트라우마 속에서 고통스러워했다. <미드소마>의 대니 또한 그러한 삶을 살아간다. 아니, 대니는 도망치거나 대항하는 대신 머무르길 택한 유일한 외부인이다. 대니는 트라우마로부터 도망칠 수도 없고, 단순히 트라우마를 지워버릴 수도 없다. 그런 쉬운 길은 애초에 영화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대니가 호르가에 도착한 순간부터 대니의 인생은 호르가 마을의 라이프 사이클에 편입되었다. 대니의 남은 인생은 운명론적으로 결정되었다. <미드소마>에 <유전>처럼 초현실적인 오컬트적 존재가 등장하진 않지만, 이 영화를 오컬트로 부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미드소마>는 <유전>과 마찬가지로 정해진 운명을 따라가게 된 사람의 이야기이다. 다만 이 운명적 순환 가운데 대니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한 가지 남겨진다. 그것은 폭소할 수밖에 없는 섹스씬 이후 등장하는 그 선택이다. 대니는 트라우마를 지우지 못했다. 대신 트라우마를 유지시키는 것들을 제거하는 선택을 한다. 영화에서 처음으로 웃음을 짓는 대니의 표정으로 끝나는 영화는 놀라운 상쾌함을 제공한다. 이 뜻밖의 상쾌함은 대니의 험난한 극복의 여정을 140분 동안 지켜봤기에 가능한 감정일 것이다.